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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흉포한 성지침서, <팻 걸>

첫 경험을 향한 한 자매의 대담한 바캉스, 아름답고 흉포한 성지침서가 되다

프랑스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이야의 스크린은, 이를테면, 포르노적 복음서다. 단단하게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거침없이 들이대고, 여성의 몸을 유린하고서야 ‘복음’을 외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구원, 아니 해방될 수 있다고. 마치 물에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질러서 물의 순수성을 증명하려는 듯 그의 영화는 양립불가능의 재료로 뭉쳐진 세계처럼 보인다. 우리를 처음 도발했던 <로망스>(1999)와 제한상영관 공식 1호 상영작이 된 <지옥의 해부>(2004)만 놓고보면 그렇다. 게다가 <로망스>는 대단히 교훈적으로, <지옥의 해부>는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기에 그의 복음은 가짜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그의 필모그래피 중간쯤에 있는 <팻 걸>이야말로 그와 그의 복음을 이해하기에 적당하다. 바캉스 떠난 10대 소녀의 첫 경험 체험기를 통해 그의 정신적, 육체적 기원이 온전히 드러나는데, 이건 <로망스>에서 뿌옇게 처리돼 시야에서 사라졌던 성기와 체모의 진면목이 <팻 걸>에 와서야 제 모습을 보이게 된 것과 비슷하다. 또 세 모녀의 긴 귀갓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상한 긴장감은 대단히 영화적이어서 웬만한 스릴러를 무색하게 만드는데, 이건 영상에 대한 부족한 재능을 지적 상투성으로 감추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식시킨다.

여자: 보봐르를 읽어보세요. 훌륭한 글들이죠. 전 바르도를 좋아해요. 하지만 그 여자도 섹스문제죠.

사회자: 왜 이런 문제를 연구하시나요?

여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니까요. 그건 인류의 원초적인 문제이고 그 단계에선 누구도 완벽할 수 없어요. 세상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은 훨씬 복잡하죠.

<팻 걸>은 난데없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뷰를 길게 보여준다. 섹스문제야말로 모든 길로 통할 수 있는 ‘마스터 키’라는 주장에 10대 소녀였던 카트린 브레이야는 환희를 느낀 적이 있다. 소녀 시절의 카트린 브레이야는 배우이자 가수였던 로라 베티의 선동적인 노래에 ‘감복’했었고, 그의 노래를 ‘팻 걸’ 아나이스에게 부르게 하고 싶었으나 원하는 곡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이 인터뷰 장면을 발견하고 영화에 삽입했다. 그리고 자신이 10대 시절 써두었던 노래를 아나이스에게 부르게 한다. “밤이나 낮이나 너무 심심해. 만약 내가 꿈꿀 상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살았든 죽었든 남자든 시체든 짐승이든 상관없는데….”

살집이 잔뜩 오른 아나이스는 10대 소녀 카트린 브레이야의 귀환이다. 시체든 짐승이든 상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아나이스의 욕망은 멋진 로맨스의 환상에 젖어 있는 언니 엘레나의 그것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르다, 는 것이 <팻 걸>의 명확한 결론이다. 카트린 브레이야는 10대부터 이미 확신범이었다. 아나이스는 얼굴도, 몸매도 예쁘기 그지없는 언니 엘레나에게 거듭 자신의 확신을 들려준다. “첫 경험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대충 해야 한다”는 걸, 그래야 “그 사랑이 거짓인 걸 깨닫고 상처받는 일이 없다”고, “여자는 비누랑 달라서 닳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경험으로 성숙해지고 남자도 더 큰 기쁨을 얻게 된다”고. 엘레나는 아나이스의 이 복음을 외면한 탓에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잘생긴 대학생의 꾐에 빠져 낭패를 본다. 그뿐이랴. 복음을 떠받들지 않으면 그 이상의 천벌을 받는다는 걸, 카트린 브레이야는 극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설파한다. 그뿐이랴. 파리로 돌아가면 처녀성을 잃은 너의 몸을 아빠가 검사할 거라고 엘레나를 위협하던 어머니도 함께 ‘지옥’으로 보내버린다.

<팻 걸>에 이르러 궁금증이 모두 풀리는 건 아니다. <로망스>와 <지옥의 해부>에도 반복되는 질문. 왜 그는 일회용 배설을 위한 남자의 사탕발림을 혐오하면서도 발기된 남자의 성기를 어김없이 노출시켜야만할까. 또 여자에게 해방된 쾌락을 선사하는 남자는 ‘평균형’이 아니라 사도마조히스트로 현신할까. <로망스>에서 여성의 욕망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다가서는 중년의 교장 로베르토는 사디스트였고, <지옥의 해부>에선 여성의 성기에 막대기를 꽂는 탐험을 감행하던 게이였으며, <팻 걸>에선 살인강간범이다. 혹시 그는 남성을 동급 인간으로 수용하기보다 그들의 성기와 거친 손만을 필요한 도구로서 인정하겠다는 건 아닐까? 엘레나에게 몹쓸 형벌을 내리기는 하지만 엘레나와 아나이스의 밀고 당기는 자매애만큼은 부정하기 않기에 더욱 그런 답안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카트린 브레이야는 지적 상투성에 기댄 선동가가 아니라 의기충천한 전복자임에 틀림없다.

:: <팻 걸>의 두 배우

자연스런 연기의 아나이스, 매혹적인 눈빛의 록산느

카트린 브레이야는 <팻걸>을 실제에서 가져왔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 하나를 머리 속에 보관해두었는데 그것이 수영장에서 우연히 본 장면과 스파크를 일으켰다. “어느 날 호텔 수영장에서 보게 된 모습이 출발이었다. 살찐 사춘기 소녀가 수영장을 왔다갔다하며 마치 상상의 소년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장면. 그리고 소녀의 부모와 언니가 수영장 한켠에 있었다.”

아나이스는 그 소녀로부터 탄생했고, 극중 이름과 같은 아나이스 르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수영장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다. <팻 걸>은 아나이스 르부의 데뷔작이다. “캐스팅 중이던 카트린 브레이야를 만나게 됐죠. 마침내 세명이 남았고, 카트린은 우리에게 각본을 전부 읽게 했어요. 거기서 내 자신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캐릭터가 실제의 나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아나이스 르부가 아닌 아나이스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다.

엘레나 역의 록산느 메스키다는 매혹적인 눈을 가졌다. <팻 걸>에서 엘레나의 눈빛은 ‘허당’이지만 실제의 그는 그렇지 않은 듯. “난 이 시나리오를 학교에서 읽었요. 이야기가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지요. 그렇게 아주 기묘한 상태로 학교 주위를 걷다가 이야기 안에서 작동하는 흥미로운 뭔가를 발견했어요. 난 <로망스>도 보았는데 상스럽다기보다 대단히 순수한 뭔가를 보여주고 있었어요. <팻 걸>은 꽤 노골적인 순간이 있긴 하지만 <로망스>보다는 훨씬 부드럽죠.”

록산느 메스키다는 <팻 걸>로 시카고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카트린 브레이야의 또 다른 작품 <섹스 이즈 코미디>에서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거대한 가짜 페니스 앞에서 난감해하는 영화 속 배우 캐릭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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