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허허실실 <인디아나 존스>식 모험담, <내셔널 트레져>
김도훈 2004-12-28

부아메리카 건국사의 음모이론 속으로 숨어들어간 허허실실 인디아나 존스식 모험담.

국보(National Treasure)의 역사란 모름지기 도둑질의 역사다. 로제타스톤을 보기 위해서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야 하고, 밀로의 비너스를 보기 위해서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국보의 역사는 제국주의 역사이며 제국주의 역사는 곧 도둑들의 역사다. 이러니 가장 거대한 강도국가이면서도 정작 ‘괴도 뤼팽’적으로 우아한 문화 약탈사를 부러워하는 미국인들의 콤플렉스는 종종 대리만족의 구실들을 찾아 헤맨다. <내셔널 트레져>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비교적’ 단아한 전리품 컬렉션에 대한 미국인들의 보상심리처럼 보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굳이 불쾌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함의를 찾는 것도 일면 구차하긴 마찬가지일 테다. <내셔널 트레져>는 그같은 보상심리를 이용해 자국 관객의 주머니를 노려보겠다는 알뜰한 기획성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974년의 워싱턴 DC에서 시작한다. 소년 시절의 벤자민 프랭클린 게이츠(이하 벤)에게 할아버지는 미국 건국의 공신들이 숨겨둔 템플러 기사단의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밀은 샬롯에 있다’라고 씌인 쪽지를 전해준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의 후손인지 추측이 가능한 벤(니콜라스 케이지)은 성인이 되어서도 보물사냥꾼으로 활동하며 템플러 기사단의 보물을 찾는 데 인생을 보낸다. 2세기에 실존했던 템플러 기사단은 솔로몬 수도원에서 발굴한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후 보물의 행방도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고 알려져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내셔널 트레져>와 벤은 그 막대한 양의 보물이 템플러 기사단의 후예이자 비밀조직인 프리메이슨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확신한다. 벤은 곧 할아버지의 쪽지에서 실마리를 찾아 북극에 묻혀 있는 ‘샬롯’이라는 배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발견한 담배 파이프로부터 보물의 행방이 독립선언문의 뒷면에 보이지 않게 인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독립선언문이 등장하는 영화에 악역은 당연히 외국인이 되어야 할 터. 벤의 탐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던 영국인 이안(숀 빈)은 신성한(!) 독립선언문을 훔치는 것을 거절한 벤을 배신하고, 선언문을 손에 넣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한다. 벤과 컴퓨터 천재 라일리는 그들을 막는 유일한 길이 먼저 훔치는 도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형적인 케이퍼무비(Caper Movie: 가볍고 유쾌한 미국식 범죄영화)처럼 경쾌하게 시작한 영화는 곧 국립고문서 보관실의 아비게일 체이스(다이앤 크루거), 벤의 아버지(존 보이트), FBI 반장(하비 케이틀) 등 다수의 등장인물과 프리메이슨이 얽힌 미국 건국 음모이론,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서 영향받은 것이 분명한 고고학적 미스터리의 얼개들을 한꺼번에 짊어지고서 도회판 <인디아나 존스>처럼 달려간다.

<내셔널 트레져>는 사건들이 비디오 게임의 스테이지처럼 점층적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제리 브룩하이머 영화다. 10분짜리 클리프 행어(Cliff Hanger: 매회 위기상황에서 끝이 나는 TV 모험연속극)처럼 영화는 끊임없는 액션 시퀀스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접합부위는 최소한으로 줄인다. 제리 브룩하이머표 영화란 이처럼 느긋하게 쉬어가는 순간이 없는 액션 시퀀스들의 연속극 모음집이다. 그러나 <내셔널 트레져>는 원초적인 클리프 행어로서의 재미에서 제리 브룩하이머표 전작들보다도 많이 떨어진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 <페노메논> 등 할리우드식 휴머니즘을 진하게 풍기는 영화들을 연출했던 존 터틀타웁에서 혐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각 액션 시퀀스들을 긴박하게 소화하는 데는 영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션 임파서블>의 도입부와 닮아 있는 독립선언문 강탈 시퀀스는 <버라이어티>에 따르자면 “스크루 드라이버와 노트북 하나면 어떤 바보라도 훔칠 수 있었을 듯” 느슨해 보이고, <인디아나 존스>에서 세트를 빌려온 것처럼 보이는 클라이맥스의 지하교회 장면은 나무 계단이 무너지고 주인공들이 떨어져 내려도 긴장감이 가슴을 내려앉히지 않는다. 제리 브룩하이머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시청각을 얼얼하게 만드는 블록버스터의 기름진 성찬을 기대했을 터이나, 정작 완성된 요리는 채식주의자의 식단처럼 기름진 육즙이 쏙 빠져 있다.

하지만 역으로, <내셔널 트레져>의 대단치 않은 야심은 영화를 좀더 접근성이 좋은 가족영화로 변모시켰고, 미국 비평가들이 “<인디아나 존스>나 <다빈치 코드>의 색깔없는 모방작”이라며 혹평했던 오리지널리티의 결여는 오히려 ‘익숙한 가족용 모험담’에 목말라 있던 관객을 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성공을 거두게 만들었다. 사실 서사적, 극적 짜임새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시종일관 허허실실 이끌고 가는 미국식 낙천주의는 <내셔널 트레져>의 가장 안전한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한 낙천주의에서 기인하는 순진함이 껄끄러운 정치적 메시지와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내셔널 트레져>는 ‘가장 나쁜 제리 브룩하이머 영화’의 혐의를 벗는다. 만약 메가폰이 마이클 베이에게 돌아갔더라면 이 작은 모험담은 미국 건국을 (음모이론이 아닌) 신화의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팍스 아메리카나 영웅담으로 변질되었을 테다. 다만 이같은 역설적인 성공을 제외한다면, 영화의 진정한 공신은 니콜라스 케이지다. 그가 시침 뚝 떼고 정신나간 고고학적 천재를 연기하며 말도 안 되는 실마리 앞에서 열렬히 흥분할 때, 영화의 느슨함과는 무관하게 이상한 설득력을 얻는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1천만달러 때문에 출연한 상업영화 속에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구원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실로 유쾌한 경지다.

:: ‘템플러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의 기원

종교에 기반한 비밀결사조직

<내셔널 트레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아이디어는 ‘템플러 기사단’(성당 기사단)의 숨겨진 보물과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에 대한 음모이론에서 가져온 것이다. 공식적인 역사에 따르면 엄청난 부를 지니고 유럽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템플러 기사단은 교황과 프랑스왕의 명령에 의해 1307년에 해체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기록들에 의하면 템플러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당시 획득한 그리스도의 성배를 포함해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이같은 이야기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내셔널 트레져>는 템플러 기사단의 보물이 건국 초기의 미국으로 비밀리에 운반되었다는 (음모이론계에서는 꽤나 인기있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한편 ‘프리메이슨’은 템플러 기사단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비밀결사조직. 정식으로 알려진 것에 따르면,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시민주의적 형제애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서, 템플러 기사단으로 거슬러올라가지 않는다면 중세 석공(石工: 메이슨)들의 길드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18세기 중엽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이후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도 퍼져나갔는데, 계몽주의 사조에 부응한 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인과 중산 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다만 종교적 요소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와 정부들로부터 탄압을 받아 이후에는 비밀결사조직으로 존재를 이어왔다. 프리메이슨은 그같은 비밀결사적 요소들 때문에 음모이론이나 영화, 문학작품들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내셔널 트레져>는 벤자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 등 미국 건국의 공신들 대부분이 프리메이슨 단원들이었다는 설에서 시작해서, 미국의 1달러 지폐에 실지로 인쇄되어 있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알려진) ‘전지전능의 눈이 달린 피라미드’ 등의 요소들을 보물을 찾는 실마리로서 이용하고 있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