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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 <거짓말>

짓궂게도 장선우 감독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옮겨오면서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 첫째 구멍, 둘째 구멍, 셋째 구멍이란 원작에 없는 중간제목을 붙였다. 논란과 대결을 의도한 장정일의 말썽 많은 원작에 장선우는 자기식의 방점을 찍어 각색한 것이다. ‘구멍’의 물리적 의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난 너의 세 구멍과 전부 하고 싶어.” J라는 남자는 아예 구멍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그는 불편하다. 그곳은 모두 ‘거짓말’이다. 여관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별로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는데, J는 굳이 여관만 전전한다. 그것도 땟국물 전 이불과 값싼 조명이 달린 눅눅한 여관만.

그러고 보면 여관도 구멍이다. 그곳에서의 습한 기억을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만, 짐짓 보이지 않는 척하는 그래서 세상에는 없는 척하는, 세상의 구멍이다. 장선우 감독은 <우묵배미의 사랑>과 <경마장 가는 길>에서 이미 과시했지만, 여관 장면의 대가다. 여인이 욕실에 있을 동안의 어색한 긴장, 방문을 나서기 직전의 허전함과 망설임 같은 미묘한 느낌을 침대에 걸터 앉아 있거나 신발끈 매는 동작 하나하나에 실어내는 솜씨는 <거짓말>에서도 여전하다. <거짓말>은 세상의 구멍에 처박혀, 한 여자의 구멍 속으로 아주 맹렬하고 폭력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격하는 한 남자의 고백록이다. 그래서 밝고 건전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비거는 영화다.

두 남녀가 여관방에 들어서자마자 “나 너랑 X하고 싶어”라며 일을 벌이기 시작하니 이건 에로스가 아니다. 입과 성기와 항문을 두루 사용하는데다, 곡괭이 자루와 철사줄까지 동원되는 사도마조히스트의 섹스는 훔쳐보기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기실, 이 영화가 등급위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 과도한 노출이나 섹스의 빈도가 아니라 배설기관과 생식기를 같은 반열에 놓는 역겨운 성행위와 아주 직설적인 비어다. 망설이지 않고 외설과 변태의 향연에 뛰어든다 해도, <거짓말>은 의외로 육체성이 앞서는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의 육체적 조건부터 그러기엔 벌써 글렀다. 영화에서나 실제에서나 국제적으로 이름난 조각가라 해도 J의 꾀죄죄한 얼굴과 빈약한 몸매는 차라리 서글프다. 윤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 초라한 육체가 그렇게 가공할 욕망의 소유주라는 건 정말 아이러니다. <거짓말>이 주는 불편함은, 관습적인 의미에서 육체적 매력이 전혀 없는 자가 오직 육체로만 말하려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영화는 외설적이라기보다 지루하고 답답하다.

저건 비정상이야, 정신나간 자들이야, 라고 말하고 싶을 때, <거짓말>에는 놀랍게도 처연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곡괭이 자루에 길들여진 Y가, 피곤해서 때릴 힘조차 없어진 J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제발 나를 좀 때려줘”라고 비굴하게 울먹일 때, 이 남자의 황폐한 내면이 극적으로 솟아오른다. 그는 똑같은 애걸을 그의 아내 앞에서도 반복한다. 남녀가 공사장 옆을 지나면서 각목을 훔치려고 머뭇거릴 때, 이들은 더이상 이 세상에 속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슬픈 인간들처럼 보인다. 이들은 간통 외엔 어떤 범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으나, 멋진 악당처럼 반영웅의 대접을 받을 자질조차 전무하다. 구멍을 향한 Y의 무구한 집착은 그래서 사멸을 예감케 한다. 섹스 이외의 일상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데도 광장에서의 삶이 증발해버린 Y의 절망은 동시대적 울림이 있다. 원작 소설에선 엷은 이 캐릭터의 구체성이 <거짓말>을 장선우의 영화로 만든다.

<거짓말>은 금기의 경계선을 침범하며 제도와 예민한 게임을 벌이는 데 몰두해온 장선우 감독의 중간결산 같은 영화다. 이번 게임에는 <나쁜 영화>의 과장된 형식의 제스처가 줄어든 대신, 인물의 심성을 리얼리스트의 감각과 해학적 대사로 파고드는 <우묵배미의 사랑> 시절의 솜씨가 되살아났다. 고도의 인화성 소재를 툭 던져놓고도 별 관심없다는 듯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는 건 여전하지만, <거짓말>에는 밑바닥 삶을 비애의 기운을 섞어 맛깔스럽게 그려내는 초기 장선우의 장기가 남아 있다. 외적 조건의 대단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의 Y는 <우묵배미…>의 박중훈을 연상시킨다. 피학을 애걸하는 Y의 구차한 몰골은 어렵사리 최명길과 살을 맞대고 울먹이는 박중훈의 모습과 어쩐지 형제처럼 보인다. <거짓말>은 말하자면, <우묵배미의 사랑>의 포르노판이다. 세상에서의 당당한 삶도, 구멍으로의 회귀도 막혀버려 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다. 실패한 이상주의의 절망을 포르노양식으로 접수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감각의 제국> 다음의 리스트에 놓이기엔 너무 단조로운 구성이 흠이지만, 장선우 감독은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그 속도에 밀리지 않고, 자신의 호흡으로 정리하는 경지를 펼쳐보인다.

<거짓말> 심의통과기

세 번째 프로포즈

<거짓말>이 두번의 등급보류의 상처 끝에 12월29일 마침내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냈다. 등급분류위원회 소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찬성 9명, 반대 1명으로 <거짓말>의 등급부여를 통과시켰다. 등급위 위원장인 김수용 감독은 “이제야 무거운 짐을 벗어놨다. 하마터면 새 천년까지 빚을 짊어지고 갈 뻔했다”라며 반가워했다.

세 번째로 등급위에 들어간 <거짓말>은 처음 버전과 사뭇 다르다. 애초 버전에서 15분가량이 삭제됐다. 우선 Y의 신분이 고등학생임을 드러내는 장면 대부분이 사라졌다. 등급보류의 결정적인 사유였던 “미성년자와의 변태적 성행위”의 단서를 지우기 위한 제작사의 고육지책이었다. 또한 성기나 욕설이 들어간 대사 일부를 지웠다. 심의에 참석했던 한 위원은 “영화가 많이 바뀌었다. Y가 여고생임을 직접 드러내는 설정이 없어졌다. 영화가 많이 순화돼서 그 정도면 18세 이상이 봐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수용 감독 또한 “제작자가 영화를 극장에 걸고 싶어서 18세 관람가 기준이 뭔가를 많이 고민한 것 같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위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5∼6개월 전의 프린트와는 전혀 다른 게 확실하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거짓말>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직 3차 심의에 제출된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장선우 감독은 “기대 밖이다. 상황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다. 그는 제작사인 신씨네를 믿고 <거짓말>의 심의 관련 문제를 일임했다고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미 <거짓말>이 음성으로 유통되고 있는 마당인데 여기에서 더 자른다면 관객이나 나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8일 1차 등급심의 신청에서 최종결정까지 무려 6개월을 끌어온 <거짓말>은 드디어 관객과 조우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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