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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없는 혼돈 그 자체의 영화, <스테이>
김현정 2005-11-01

정신과 의사 샘(이완 맥그리거)은 갑자기 휴가를 떠난 동료 베스의 환자 헨리(라이언 고슬링)를 대신 맡게 된다. 자동차 방화죄로 병원에 오게 된 헨리는 예지 능력과 기시감을 가지고 있는 미대 학생. 샘은 자신의 생일인 3일 뒤에 자살하겠다고 예고한 헨리를 찾아다니면서 이상한 일들에 부딪히고, 그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자살을 기도했던 샘의 여자친구 라일라(나오미 왓츠) 또한 자신의 삶에서 헨리의 흔적을 발견한다.

<스테이>는 <몬스터 볼>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의 영화다. 차분한 템포로 발걸음을 떼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던 포스터는 이번에는 정보가 없었다면 그의 영화일 거라고 짐작하기 힘든 스릴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스테이>는 혼돈의 영화다. 벽면 가득 “용서해주세요”라고 적어놓은 헨리는 샘의 눈먼 스승이 죽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묘지에 묻혔다는 헨리의 어머니는 샘이 자기 아들이라고 우긴다. 샘이 가는 길목마다 똑같은 옷을 입은 똑같은 사람들이 두셋찍 짝지어 다니곤 한다. 그러나 스토리만이 혼돈은 아니다. 대기의 입자가 낱낱이 쪼개진 다음 다시 합성되는 듯한 <스테이>의 화면은 어쩌면 이 영화가 아무런 단서없는 혼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암시한다.

그러므로 <스테이>는 스릴러라고 규정하기 힘든 영화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헨리와 샘은 왜 서로의 삶을 포개고 있는 걸까, 그리고 헨리는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걸까, 왜 죽으려 하는 걸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죽음과 죄의식을 깨우쳐야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는 반전과 증거로 가득해야 할 장르를 우회하여 다시 한번 자신의 영토로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그 길이 지나치게 완만했던지 <스테이>는 시달리다 못해 이젠 지쳐서 끝나기만을 바라는 악몽과도 같은 영화가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순수한 동정과 구원 같은 죽음이 맞물리기까지, <스테이>는 따지고 들자면 복잡하나 지켜보기엔 지루한 드라마만을 보여준다. 영화의 정체를 모르는 관객은 의미없는 단서를 맞춰보다가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단서들을 제시하는 반칙을 범했지만, 허구의 드라마 자체도 재미있었다. <스테이>는 그 점에서 <유주얼 서스펙트>와 너무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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