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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도, 감정도 없는 그들만의 섹스, <애인>
이영진 2005-12-06

<애인>의 주인공들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남자, 여자로 불러달라고 한다. ‘묻지마 연애’를 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든 영화를 보면 남녀주인공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는 제작진의 믿음 때문이다. <애인>의 보도자료 첫머리에는 한 설문 조사를 빌려 이렇게 쓰여 있다. 40% 넘는 기혼여성이 교제 중인 애인이 있다고, 현재 애인이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애인을 갖고 싶다는 의견도 60% 가까이 된다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결혼. <애인>은 캐묻지 않아도 현재 한국의 남녀들이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딜레마를 겨냥해서 기획된 영화로 보인다.

결혼을 앞둔 한 여자(성현아)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남자(조동혁)는 한 여자에게 접근한다. 한 여자는 한 남자의 느닷없는 제안을 물리치지만, 한 여자와 한 남자는 다시금 우연히 재회하고, 서로에 대한 호감을 몸으로 확인한다. 한 남자는 어차피 내일이면 비행기 타고 아프리카로 떠날 사람이다. “날 좀 갖고 놀아줄래?” 한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한 여자는 주저하지 않는다. 한 여자는 예비 남편에게 들키지 않을 비밀 연애를 시작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짧지만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오래 지속되지 못할 관계임을 직감하는 듯이.

<애인>에서 ‘왜’라는 질문은 중요치 않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감독의 이력을 드러내 보이듯,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쿨한 만남을 전제로 한 두 남녀 사이에 구질구질한 각자의 사연을 끼워넣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직 두 사람은 ‘그들만의 섹스’에 탐닉한다. 갤러리에서 시작되어 클럽을 거쳐 모델하우스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하룻밤 몸섞기가 이어지는 동안 서사는 찾아볼 수 없고, 감정은 휘발되고 없다. 섹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몸이 감정을 대변하는 유일한 도구라고 하지만, 말초적인 볼거리만이 릴레이로 이어질 뿐이다.

여자는 왜 금지된 사랑을 꿈꾸는 것일까. 왜 그토록 매력적인 남자와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그 남자가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으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여자는 뒤늦게 남자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 대사는 너무 늦은데다, 쿨한 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치곤 촌스럽기까지 하다. 두 사람의 일탈과 도발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설파하는 듯하더니 후반부에 들어선 갑자기 운명적 사랑에의 갈구로 전환된다. 설득력 있는 호소의 과정은 쏙 빼놓은 채 말이다. 제작진은 “에로영화로 오해하지 말아달라. 진지한 멜로영화다”라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 진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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