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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유쾌한 표면 뒤에 모진 상처의 흔적, <달려라, 장미>

한 부부가 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막 사랑을 나누려는 그와 그녀. 남자는 선풍기를 강으로 튼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온 방을 메운다. 남자 아래 누워 있던 그녀는 짜증나는 얼굴로 말한다. “약으로 해줘.”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뭐? 야쿠르트 달라고?”

이를테면 결혼은 그런 것이다. ‘약으로 해줘’가 ‘야쿠르트’로 이해되는 저 황당하고 씁쓸한 순간의 연속. 연애할 때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2년차, 그들은 아무리 말을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속옷이 눅눅해질까봐 화장실에서 벌거벗은 채 나와도 부끄럽지 않다. 서로의 눈빛을 읽기는커녕, 이제 관심사는 그 혹은 그녀의 시선이 아니라 내 몸에 달라붙는 속옷의 촉감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은 정녕 사실일까. 상대의 욕망을 욕망하고 상대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졌던 그 시절은 까마득하다. 그때는 그렇게 한 세계 안에서 소통한다고 믿었지만, 지금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만 남은 그와 그녀는 서로 다른 우주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달려라, 장미>에는 한 부부의 그처럼 무감각해진 결혼생활과 이혼 뒤의 재회, 그리고 그 재회를 끝으로 마침내 진정으로 이별하기까지의 시간이 단 며칠로 압축되어 담겨 있다. 진작 버렸어야 할 미련이었는데, 그들은 끝장을 보고서야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시의 낭만적인 동거와 지리멸렬한 일상과 결단적 헤어짐과 끈질긴 미련과 결국 맞이하는 깔끔하지 못한 영영 작별. 이것이 김응수 감독이 결혼과 이별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그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김응수 감독은 전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와 <욕망>에서 영화를 짓눌렀던 관념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고 훨씬 유쾌하고 현실적이지만, 그만큼 비루해진 일상의 세밀한 상황들로 돌아왔다.

<달려라, 장미>를 지탱하는 이야기의 틀, 즉 결혼과 이혼과 재회의 구조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다. 결혼이라는 것에, 이혼이라는 것 자체에 뭐 그리 획기적이며 재기발랄한 이야기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장영미(최반야)와 강남대(김태훈)라는 캐릭터 및 그들의 입체적인 관계에 승부수를 둔다. 이들의 표정과 이들이 나누는 자잘한 대화와 행동들이 매번 클로즈업되는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힐 만큼, 영화에서 장영미와 강남대의 존재감은 매우 지대하다. 그 둘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가 워낙 강한 탓에 이들이 놓인 시공간의 변화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시종일관 배우 두명의 동선과 과장된 대사들에 의존하는 한편의 연극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연극적인 상황으로 인해 배우들은 결혼과 이혼이라는 리얼리티 속에서 끊임없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는 이러한 연극적인 설정이 꽤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러한 연극성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동의하게 된다. 그러한 방식은 두 남녀가 결혼과 이혼에 관한 남녀 관계의 온갖 민망한 클리셰들을 정색하며 반복하면서도 진부함에 빠지지 않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를 보다보면, 결혼이란 서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날것 그대로, 서슴없이 내보이는 과정이 아니라 한 무대 위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연기’하는 과정에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예컨대, 가슴 뛰었던 첫날의 사랑을 되돌려 무료해진 결혼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장영미와 강남대가 좁은 여관방에서 벌이는 그 닭살스러운 연기의 향연을 보자. 그들은 현실을 알면서도 연극한다. 적어도 연극을 시도한다.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을 시도하는 것,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과거를 되돌려 감으려고 하는 것, 말하자면 결혼은 그런 것이다. 그 연극이 끝날 때, 연극의 시도조차 포기할 때는 결혼도 끝난다. 그래서 영화가 아무리 연극적인 설정을 유지해도 그 안에서는 지극히 냉정하고 가슴 아픈 현실의 순간들이 보인다.

처음에 영화는 깨진 그릇같이 부서진 이들의 관계가 다시 붙여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그 우연한 순간의 부서짐도 결국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그 파편들을 억지로 붙이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그릇으로 만들 순 없다는 사실을 애써 담담하게 말해주려는 듯하다. 그것이 관계에 대한 체념이건, 냉소이건 <달려라, 장미>는 망가진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망가짐의 과정들을 천천히, 슬프지만 심각하지는 않게 짚어보는 이야기다. 그래서 영화는 줄곧 코믹하고 기발한 말들로 채워져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모든 말들은 공중에서 분해되듯,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끊임없이 어긋나는 경쾌한 말잔치가 오히려 소통의 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의 관계보다는 비굴하고 이중적인 모습으로 돌변하는 강남대의 캐릭터에 무게가 기울어지면서 이야기의 긴장은 다소 늘어진다. 관계가 아닌 한 인물의 성격적 결함에 영화의 초점이 치우쳐지자, 즉 강남대라는 인물의 얄팍한 밑바닥이 점차 전면화되기 시작하자 그간 장영미와 강남대 사이에 존재하던 끊어질 듯 말 듯한 질긴 연줄의 긴장은 한순간 허무하게 풀어져 영화적 균형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미련 가득한 그 질긴 인연을 마침내 끝장내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최대의 생채기를 남기고서야, 관계가 결코 다시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독설을 퍼붓고 나서야 그제야 돌아서기. 쿨한 이별, 멋진 헤어짐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달려라, 장미>는 가볍고 유쾌한 표면 뒤에 모진 상처의 흔적을 품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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