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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낯익은 테마를 나직하게 다루는 야심, <세일즈우먼>

마리(안 코에상)와 프랑소와(미셸 봄포일) 부부가 2살 난 아들과 함께 한적한 공원으로 소풍 나온 풍경은 ‘가정의 달’ 공익광고로 이용해도 손색없을 만큼 정겹고 평화롭다. 초록빛 나무와 풀 위에 어우러진 부부의 키스는 달콤하기보다 아름답고, 그 곁에서 혼자 노니는 아이의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예쁘다. 안정된 행복의 순간을 숲속의 차분한 속도감으로 즐기는 자태가 다른 무엇보다 돋보인다. 마리가 프랑소와를 깊이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마리가 외간남자 빌(토니 토드)의 감각을 사랑하게 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적 혹은 프랑스적 소풍의 풍광이 드러내지 못하는 진실의 대비를 관객은 오래도록 보고 있어야 한다.

‘비밀’이란 원제를 가진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대비와 보이는 대비를 고요히 병렬시키며 드라마를 돋워 나간다. 마리의 몸은 유난히 하얗고 빌의 몸은 투박하게 거무튀튀하다. 흑백의 뒤엉킨 몸뚱이를 대비시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마리는 백과사전 영업을 맡고 있는 지식 판매원이며, 뉴욕에서 파리로 건너온 흑인 무용가 빌은 휴식이 필요한 육체 판매원이다. 마리는 백과사전을 팔기 위해 빌을 만났지만 그의 미소에 사로잡힌다. 입가에 꿈틀거리는 생기가 남편의 안정된 미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파리의 외도를 다루고 있지만 카트린 브레이야의 <로망스>나 프레데릭 폰테인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의 폭풍치는 듯한 격정과는 거리가 크다. 여기선 마리가 빌에게 느끼는 매혹의 순간들이 조용히 열거된다. 대단히 미시적이어서 거칠게 몰아붙이면 보일 수 없는 말투와 몸짓과 유머들이다. 마리의 이중생활 자체는 극적일 것도 없다. 여느 불륜처럼 마리도 이 사태를 통해 늦은 성장통을 앓는다.

마리는 남편 프랑소와를 더 사랑하지만 굳이 자신의 외도 현장을 목격시킨다. 빌과의 관계를 청산할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달라진 자신의 세계를 프랑소와가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프랑소와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분노하지만 곧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마리 내부에 생겨난 대비된 무늬까지를 사랑할 것인지 말지를. 지나치게 낯익은 테마를 나직하게 다루는 야심이 새롭다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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