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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친친
2001-09-11

■ Story

신문칼럼니스트 루나 오(진혜림)는 골동품점에서 첫사랑에게 선물했던 LP를 발견한다. 선물을 팔아버린 옛애인을 원망하며 레코드를 되사려는 루나. 하지만 이 판은 이미 ‘LP특급’이라는 라디오프로그램 DJ 쯩영(곽부성)에게 예약된 상태다. 루나는 사정을 설명하며 레코드를 양보할 것을 요구하지만 쯩영은 매몰차게 거절한다. 거친 입담으로 유명한 쯩영은 방송에서 이 일을 들먹거리며 그녀를 지나간 사랑에 연연하는 한심한 여자 취급을 하고, 자존심 상한 루나는 자신의 칼럼에서 쯩영을 몰인정한 남자로 몰아세우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렇게 싸움이 잦아지면서 두 사람의 만남도 잦아진다.

■ Review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렸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미 ‘상실’한 사랑을 ‘분실’이라 믿던 어느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사랑의 회귀를 바라며 이렇게 읖조린다. <소친친>의 루나도 그렇다. 우연히 발견한 낡은 LP처럼, 옛사랑도 그렇게 우연히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쯩영은 다르다. “원하는 걸 못 갖는 것이 ‘유감의 미학’”이라며 떠난 사랑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마이크에 대고 떠든다.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듀엣음반이 매개가 되어 만난 또 한 커플의 ‘개와 고양이’는, 그러나 너무나 클래식한 방향으로 싸움과 화해를 진행시켜나간다.

‘소친친’(小親親), 즉 ‘조금씩 친해져간다’는 뜻의 제목이 무색하리만큼 루나와 쯩영의 관계는 턴테이블 위 낡은 LP처럼 1번 트랙에서 이유없이 5번 트랙으로 넘어가더니 돌연 마지막 트랙으로 튀어버린 뒤 달콤한 키스로 마무리된다. <천녀유혼> <첨밀밀> 등의 미술감독 출신 해중문은 홍콩을 하나의 거대한 세트이자 무국적의 팬시상품으로 만들어놓았다. 을씨년스러운 빨랫줄 행렬을 제외한 거리는 마치 루나의 첫사랑이 이민간 밴쿠버 도심을 옮겨놓은 듯 미끈하고, 자연스러움을 빙자한 의도적 지저분함이 느껴지는 주인공들의 방이나 색색배경에 완벽히 녹아들어가는 젊은 배우들의 의상은 광고 카탈로그처럼 비현실적이다.

창고에 쌓아놓은 천덕꾸러기 LP는 그럭저럭 클래식한 소품일 수 있지만, 이미 휜 판은 아무것도 들려줄 수 없다. 데뷔작 <친니친니>로 ‘이음새는 거칠지만 개성있는 신인’으로 기대를 모았던 해중문의 두 번째 작품인 <소친친>은 감각적 화면과 음악 속에 고민과 참신함을 상실한, <유리의 성> <성원> <라벤다> 등을 잇는 ‘홍콩공산품멜로’ 섹션에 꽂혀 있기에 알맞은 영화가 되고 말았다.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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