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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로틱 영화의 여섯 가지 맛 <러브 콜렉션>
정재혁 2006-12-13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게. 일본 에로틱 영화의 여섯 가지 맛

섹스와 사랑, 게임과 사랑, 돈과 사랑.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기획된 장편영화 프로젝트 <러브 콜렉션>은 섹스와 사랑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하는 6편의 작품 모음이다. 일본의 광고회사, 영화사, 케이블 채널이 ‘러브콜렉션제작위원회’라는 이름의 제작사를 결성, 2개월 만에 완성된 작품들은 일본에서 한달여에 걸쳐 2편씩 개봉했으며, 국내에서는 여섯편이 동시에 공개된다. 단편 옴니버스 형식이 아닌 동일한 테마를 가지고 제작된 장편 모음 영화는 일본에서 <러브 콜렉션>이 처음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걸프렌드>다. 한국에서는 <바이브레이터>로 잘 알려진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두 여자의 동성애를 소재로 사랑의 교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나카사키에서 상경한 여자 미호(가와이 아오바). 그녀는 미용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미호의 아버지는 십여년 전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이혼했고, 미호는 그런 아버지를 지금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호는 거리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난다. 미움과 섞여버린 조금의 기대감에 뒤를 따라가보지만, 아버지는 미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미호는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이상한 표정”의 미호를 만든다.

또 한명의 여자가 있다. 이름은 쿄코(야마다 기누오).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일하고 있는 이 여자는 6개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다른 남자와 자는 일을 되풀이한다. 지나간 과거가, 자신의 일상이 버거운 그녀에게 어느 날 새로운 일이 맡겨진다. 거리에서 일반인을 캐스팅한 뒤, 누드 사진을 찍어오라는 것. 일이란 이유로 일단 거리로 나서 보지만, 누드모델 제의에 선뜻 응해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몇번의 시도 끝에 쿄코는 “이상한 표정”의 미호를 만난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화가 난 미호는 누드모델이라는 엉뚱한 제의에 당황해하지만, “당신의 지금 얼굴이 찍고 싶다”는 쿄고의 말에는 이상하게도 호기심을 느낀다. 이상하고, 묘한 만남. 그렇게 두 사람은 호텔 방 안에서 모델이 되고, 사진을 찍는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Someone Please Stop the World>이다. 풀리지 않은 자신의 과거가 현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고백하는 진심. 이는 미호와 쿄코가 내뱉는 작은 신음소리이기도 하다. <걸프렌드>는 두 여자주인공의 소극적이지만 진심어린 고백을 켜켜이 쌓아간다. 사진은 단순히 찍고, 찍히는 행위를 넘어서고, 섹스와 나체는 주인공 내면의 빈 공간과 상처를 표현한다. 쿄코는 미호에게서 특별한 얼굴, 특정한 표정을 잡아내는 대신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대화하는 미호, 맥주 마시는 미호, 거품 목욕을 하는 미호. 셔터 소리와 함께 정지된 미호의 일상에는 어느덧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미래와의 소통이 고개를 든다.

안도 히로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음과 몸>도 두 여자의 교감을 담은 작품이다. 토모미(아쿠네 유코)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 숲속 한쪽에 쓰러져 있는 친구 케이코(모리 미사키)의 자전거를 발견한다. 케이코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숲으로 들어가자 케이코가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다. 도와주겠다는 마음에 돌로 남자의 머리를 치지만, 이후 케이코와의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그리고 몇년 뒤, 도쿄에서 원조교제를 하며 생활하고 있는 케이코에게 토모미가 전화를 걸어온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의 재회. 케이코는 “모든 것을 다 잊기 위해 도쿄로 떠나왔다”며 토모미의 방문을 불편해하지만, 토모미는 케이코와 똑같이 되고 싶다며, 동거를 제안한다. 이후 토모미는 원조교제를 하고, 두 여자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정적인 화면과 선정적인 섹스장면의 대조가 인상적인 <마음과 몸>은 과거의 상처를 함께 치유해나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토모미와 케이코가 함께 어딘가로 떠나는 영화 후반부의 연결이 자연스럽진 못하지만, 멀리서 관조하는 듯이 쳐다보는 카메라와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두 배우의 연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밖의 다른 영화들은 좀더 경쾌하고 유쾌하다. 에로 소설을 쓰는 서클 ‘전기버튼’(여자의 음부를 칭하는 은어다) 이야기를 담은 영화 <달과 체리>는 사랑을 섹스처럼, 섹스를 게임처럼 여기는 여자와 아직 동정을 떼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여자 마야마(에구치 노리코)는 소설 내용을 위해 켄이치(나가오카 타스쿠)와 섹스를 한다. 하지만 켄이치는 마야마를 점점 여자로 느끼게 된다. 사랑과 소설, 섹스와 사랑. 영화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은 남자, 켄이치의 나레이션을 통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랑 게임에 유쾌한 결론을 제시한다. 하라 마사히로 감독의 <기묘한 아파트>는 섹스를 하는 남녀의 교성과 오디오에서 울려퍼지는 헤비메탈 록 음악 소리로 항상 시끄러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강도에게 연정을 느끼는 인질범의 이야기 <은행털이범과 어머니>와 택시비를 몸으로 지불하려는 여자의 이야기 <그 남편, 그 여자의 사정>도 일본 특유의 에로틱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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