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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애니메이션의 신화 <에반게리온 :서(序)>
오정연 2008-01-23

나의 지구를, 나의 추억을 지켜줘서 고마워, 에바

“다시 한번 일본의 모든 에너지와 우리의 바람, 인류의 미래, 살아남은 모든 생물의 생명을, 너에게 맡길게.” 두려움과 망설임을 뒤로하고 에바에 몸을 실은 신지에게 미사토가 말한다. ‘로봇만화영화란 어쩔 수 없어’라며 어깨를 으쓱할 만한, 실로 낯뜨거운 대사다. 그러나 장담건대, <에반게리온: 서(序)>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대사를 맞닥뜨린 관객 중 누구라도 울컥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만일 당신이 10여년 전 설레어 ‘복음’을 접했던 그들 중 한명이라면, 인류의 종말을 앞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고독을 곱씹던 신지의 여린 어깨가 안쓰러웠다면, 말할 것도 없다.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홀로 분투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하는 것과 동의어다. 관객에게도 그것은 변함없이 급박한 문제다. 12년 전 TV시리즈 1화부터 6화까지의 재구성 버전이자 극장판 4부작의 1편에 해당하는 <에반게리온: 서(序)>는 여전한 뜨거움으로, 어른이 되어도 외로운 어제의 팬과 한층 더 고독한 오늘의 팬을 함께 아우른다.

에바가 세월을 뛰어넘은 저력은 영화 안팎에 있다. 알 수 없는 적 사도의 습격에 맞서 영문을 모른 채 생체병기에 탑승하는 아이들과 그처럼 연약한 아이들에게 미래를 건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빈틈 많고 불친절한 내러티브는 10여년이 흐른 지금 21세기적인 텍스트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극장판을 TV시리즈의 리빌드(Rebuild) 버전으로 명명한 총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21세기 기술을 이용하여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다시 그리고, 디지털로 매만졌다. 에바의 폭주와 사도의 섬멸 등 익히 알고 있는 광경이 전대미문의 스펙터클로 새삼스럽게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매트릭스>에 비견할 만한 지각변동을 불러왔던 로봇애니메이션의 신화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아들 신지를 병기에 밀어넣는 비정한 아버지 이카리 겐도 사령관과 정체불명의 상층부가 연루된 인류보완계획의 실체를, 이제는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도 있다. 일본 아니메의 미소녀 서비스(?)의 선두주자 레이의 누드장면 등 TV시리즈에서 소소하게 변화한 면모를 꼼꼼히 따져보는 방법도 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 이어지는 예고편을 통해, ‘서비스! 서비스!’만으로도 들뜨던 그때 그 시절을 통째로 곱씹는 건 어떤가. 단지 자족적인 회고가 아니다. 업그레이드된 오리지널리티를 통해 달라진 우리를 돌아보는 것. 에바의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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