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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만나는 낡은 공포 <100피트>
안현진(LA 통신원) 2008-07-23

유령 첫 등장에 놀람 지수 ★★★★★ 유령 지루함 지수 ★★★☆ 특수효과 ‘안습’ 지수 ★★★★

※스포일러 있습니다. 매 맞던 아내 마니(팜케 얀센)는 경찰이었던 남편 마이크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모범수로 풀려나 가택연금형에 처한다. 남편을 죽인 곳으로 돌아온 마니는 100피트(30.48m) 반경으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전자 발찌가 채워지는데, 마이크의 파트너였던 생크스(바비 카나베일)는 규정을 하나라도 위반하면 감옥으로 돌려보내겠다며 수시로 그녀를 감시한다. 2년 넘게 비워뒀던 집에는 혈흔과 먼지가 뒹굴고, 이웃은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한다. 전기도 끊긴 지 오래라 냉장고의 음식까지 모두 상한 집에서 마니를 맞아주는 것은 고양이 한 마리와 식료품을 배달해주는 청년 조이(에드 웨스트윅)뿐이다. 철창 안에서 범죄자들과 생활하던 이전과 집안에서 족쇄를 차고 경보가 울릴까 전전긍긍하는 지금의 삶 중 어느 것이 나을까. 감옥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니가 외로움과 치욕을 견디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곳은 집이다.

영화의 기특한 점부터 말하자면, 유령의 정체를 초반에 밝히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령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깜짝 놀랄 만큼 강렬하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희다 못해 푸른 피부의 동양 귀신과는 전혀 다른, 령(靈) 그 자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니가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흐물거리는 불분명한 형체가 삼킬 듯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일 뿐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통에 초반의 공포는 용두사미가 되고, 장면보다 한발 앞선 음향은 긴장을 반감한다. 유령과의 사투에 질려갈 때쯤 마니가 유령 보란 듯이 조이와 나누는 정사 뒤 화가 난 유령의 복수장면은 과연 이 영화가 21세기에 만들어진 것인가 싶도록 안쓰러운 특수효과 일색이다. 1991년 <바디 파트>로 호러계의 신성으로 인정받은 감독 에릭 레드는 <주온> <링> 등 J-호러 팬이라고 스스로 밝혔듯이, 계단이나 지하실 등 가옥 구조를 이용한 공포의 연출에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유령씩이나 되어 남은 원혼이 마니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돌려받자 사라진다는 건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상상력도 빈곤하고, 표현도 빈곤하다. 적어도 마지막에 이르러서 사실은 남편이 살아 있었다거나 하는 황당한 반전이 없다는 점이 그나마 이 영화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구했다.

tip/ 식료품점 배달부 조이로 출연하는 배우는 국내에도 방영 중인 TV시리즈 <가십 걸>에서 거만한 갑부 도련님 척 배스 역을 연기하는 에드 웨스트윅이다. 웨스트윅은 실제로는 영국 출신 배우로, <가십 걸>과 <100피트>에서 억양을 숨긴 자연스러운 연기로 어퍼이스트사이드의 10대와 전과 6범의 브루클린 청년을 매끄럽게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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