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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 거짓과 진실을 넘나드는 <매드 디텍티브>

현란하고 과잉된 액션 지수 ★★ 두뇌싸움 지수 ★★★ 번형사(유청운)의 포스 지수 ★★★★

영화가 시작한 지 처음 몇분간은 어리둥절하다. 형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천장에 매달린 죽은 돼지를 다짜고짜 칼로 찌르고 자신은 빈 가방 속으로 들어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선배 형사의 퇴임식에서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이라며 내민다. 제목 그대로 미친 형사의 형상.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별다른 설명없이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 뒤, 영화는 시간을 건너뛴다. 그의 이름은 번 형사로 불리는 진계빈(유청운). 끊임없는 기이한 행동 때문에 경찰직을 떠난 그에게는 저주받은 능력이 있었으니, 인간 내면의 여러 인격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혈기왕성하고 젊은 호 형사(안지걸)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들고 번 형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얼마 전 숲에서 절도 용의자를 추적하던 왕 형사가 실종되고 그의 동료인 치와이만 무사히 복귀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도심 곳곳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왕 형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탄환이 발견된다는 것. 번 형사는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사건의 범위를 점점 좁혀가지만, 번 형사의 ‘비정상성’을 탁월한 수사 감각으로 신뢰하던 호 형사는 오히려 그 ‘비정상성’ 때문에 점점 두려움에 빠져든다.

두기봉과 위가휘가 공동 감독한 <매드 디텍티브>에서 우리는 두개의 세계를 본다. 하나는 번 형사가 보는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호 형사를 비롯한 나머지 평범한 인간이 보는 세계다. 두 형사가 동일한 용의자를 보거나 동일한 사건 현장을 방문할 때 서로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말인데, 이들을 교차시키고 때로는 충돌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영화의 스타일은 군더더기 없고 우아하며 섬세하다. 이를테면 치와이를 뒤쫓던 번 형사는 그에게서 일곱명의 인격을, 아니 제각기 다른 일곱명의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광경을 본다. 하지만 관객이 그들이 한 사람 안의 다중인격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 광경이 호 형사의 시점숏에 의해 그저 한 사람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여러 인격을 볼 수 있는 번 형사가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는 사건과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대신, 용의자나 피해자의 위치로 직접 걸어들어간다. 비록 사후지만, 그가 일단 자신을 범인이나 피해자와 동일시하는 순간, 마치 그들의 영혼에 빙의되듯이 사건의 순간은 소름끼치게 재연된다. 영화는 번 형사의 재연과 이를 통한 그의 추리와 실제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이에 인위적인 경계를 두지 않는다. 그로 인해 호 형사뿐만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무엇이 실재인지, 누구의 시선이 진실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두기봉의 영화답게 영화의 관심은 관객과의 두뇌싸움이 아니라 환상과 현실, 거짓과 진실을 넘나드는 데서 흐르는 ‘정서’에 있다.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내던져서 폭력의 순간을 체현하는 번 형사의 표정과 움직임은 엄격하게 절제된 의식처럼 그려진다. 그것은 차가운 지성의 결과가 아닌 뜨거운 본능에 가깝다. 그가 귀를 자르는 제스처는 광인의 상징적 이미지라기보다는 그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결단의 행위다. 영화 중간 중간 그의 얼굴에서 분리되어 홍콩의 밤거리에 떨어진 이 훼손된 신체의 이미지에는 단순한 충격을 넘어서는 고독과 절망의 울부짖음이 담겨 있다. 그것은 부패한 시스템의 거짓을 듣고 믿어버리는 유약한 귀 대신, 차라리 거짓의 이면을 투시하는 눈과 몸의 기운을 선택하고 마는 사내의 외롭고 처절한 결단의 흔적이다.

tip/두개의 인상적인 장면들. 1.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네 남자가 서로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의 긴장감과 그걸 마무리짓는 영화의 선택은 미학적으로나 내용상으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2. 번 형사가 환영 속의 아내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어찌 보면 지극히 상투적인 장면에서조차 뚝! 뚝! 떨어지는 정서.

두기봉 사단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매드 디텍티브>는 두기봉과 위가휘의 공동 연출작이다. 위가휘는 <TVB>에서의 경력을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한 감독이자 특히 치밀한 스토리 전개 능력을 인정받으며 ‘홍콩의 히치콕’이라는 별명을 얻은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하다. 두기봉과는 1996년 ‘밀키웨이 이미지’라는 제작사를 창립하고 홍콩 시네마의 독창적인 장을 여는 발판을 마련한다. <풀 타임 킬러> <대척료> 등은 두 감독이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공동 연출한 작품들이다. <매드 디텍티브>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싶었다”는 위가휘는 인간의 다중인격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형사의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의 뼈대를 잡았고, “진실을 파헤칠수록 현실감이 사라지는” 시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두기봉은 그러한 뼈대를 바탕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불어넣어 인물들의 동선이 살아 있는 촬영과 연기, 그리고 전반적인 흐름을 조율했다. 위가휘 외에도 두기봉 사단이라고 할 만한 반가운 얼굴들이 어김없이 출연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번 형사 역을 맡은 유청운이다. 코믹함과 비장함, 광인과 낭만주의자의 형상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터프한 사내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는 일찍이 <화급> <더 히어로> <암전> 등에서 두기봉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일곱개의 인격을 가진 치와이로 분한 임가동 역시 <흑사회>로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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