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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통해 본 인간의 고독한 삶 <구구는 고양이다>
2008-10-15

고양이 애호지수 ★★★★★ 기치조지 관광지수 ★★★★ 가세 료 완소지수 ★★★★

“고양이는 모든 일의 입구다.” 만화 <구구는 고양이다> 한쪽 귀퉁이에 써 있는 글귀다. 세상 모든 일에 안테나를 튕기듯 예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고양이는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일들에 대한 작고 귀여운 확대경이 된다. ‘기르는 강아지’가 주인의 공간에 들어가 함께 시간을 나눈다면 ‘함께 사는’ 고양이는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 주인의 것과는 또 다른 세계를 누린다. 그래서 이들의 발꿈치를 따라가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세계의 입구가 나오거나, 지루하다 느꼈던 일상에서 색다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누도 잇신이 고양이를 데리고 찍은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에서 주인공 아사코의 고양이 사바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구구는 고양이다>의 주인공은 만화가 아사코(고이즈미 교코)다. 기치조지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그녀는 마감이 임박한 작품 때문에 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있다. 네명의 어시스턴트가 그녀의 오른팔이고, 전화와 방문으로 마감을 재촉하는 편집부 스탭은 성가시지만 필요한 왼팔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15년간 함께 살아온 고양이 사바가 있다. 서른이 넘게 독신으로 살았지만 아사코는 사바를 동반자 삼아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사바는 세상을 떠난다. 쌓여 있던 원고를 훌훌 털어버린 날의 일이다. 풀이 죽은 아사코는 일에 대한 욕심을 잃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일을 잃어버린 어시스턴트들은 아사코가 하루빨리 작업에 임해주길 바라지만 동반자를 잃은 슬픔이 쉽게 정리될 리 없다. 영화는 아사코가 괴로움 끝에 새로운 고양이 구구를 만나며 슬픔을 정리하고 두 번째 출발을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일도, 생활도 제자리를 찾아오지만 두 고양이를 곁에 두고 보는 삶의 풍경은 어딘지 쓸쓸하고 외롭다.

만화 <구구는 고양이다>는 오시마 유미코의 에세이 작품이다. 실제로 현재 13마리의 고양이와 1마리의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 오시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만화 한편을 완성했다. 극중 아사코처럼 오시마도 1997년 악성종양 수술을 받은 바 있고 현재는 건강해졌지만 한동안 약물치료도 받았다. 평소 오시마에 대한 애정을 표해온 이누도 감독은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살려 영화를 완성했다. 고양이란 문을 통해 아사코의 삶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죽음과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 3배 빨리 살다 가는 고양이에 대한 비극은 원작의 울림만큼 크진 않지만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를 채우는 가장 큰 정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아사코와 사바가 대화하는 장면은 끝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사실 서로 다른 시간축의 공존이고, 그건 결국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실망과 아쉬움을 안겨준다. 아사코 외의 인물들 에피소드가 부드럽고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구구는 고양이다>는 고양이의 섬세한 수염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삶을 담담하지만 적절한 템포로 스케치한 영화다.

TIP/영화에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또 하나의 축은 바로 헤비메탈 그룹 메가데스의 전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이다. 이누도 감독은 그를 일본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며 신선한 느낌이란 이유로 캐스팅했다. 마티 프리드먼은 현재 일본에 거주하며 평론이나 연주를 하고 있고, 서문탁의 4집 앨범에 기타 세션으로, 일본 흑인 엔카 가수인 제로의 앨범에도 세션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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