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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이민 세대들의 슬픈 초상화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
정재혁 2008-10-15

뮤직비디오 지수 ★★★ 현실 반영지수 ★★★★ 아르헨티나 엿보기 지수 ★★

사춘기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덕규는 현재 원단회사에서 배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카지노에 다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꿈도 희망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역시 어릴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보름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기계같이 돌아가는 생활에 꿈을 버린 지 오래다. 조금 더 힘들어 보이는 건 형식이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직후 아버지를 잃었고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학교에선 따돌림을 당해 공부를 그만뒀고 지금은 다른 동포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양아치처럼 살아간다. 이민 1.5세대인 이들과 달리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이민 2세 띠나는 비교적 부유해 보인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켜는 그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한곡을 완주한 적이 없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젊은 이민 세대들의 슬픈 초상화다.

영화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이민세대 청춘들의 삶을 담았다. 돈을 벌기 위해 이주한 부모를 따라 이국에 오긴 왔지만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도, 국적에 대한 자의식도 없다. 앞에 놓인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내일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영화는 이민사회 내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 둘 제기한다.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하는 한국 사람과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착취하듯 돈을 벌어먹는 한국인 등 이민사회의 폐해를 짚어내고, 그 위에서 이민세대들의 혼란을 그린다. 하지만 마치 논점에 해당하는 사례를 하나 둘 골라낸 듯 보이는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연출의 서툼 탓인지 리얼리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가 택한 표현 방식도 진부하고 유치하다. 자주 사용된 뮤직비디오 기법은 촌스럽고 도식화된 화면 속에 터져나오는 인물들의 절규와 분노는 마치 예고라도 되어있었던 것처럼 어색하다. 2년 전에 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는 많이 부족한 영화다. 연출을 맡은 배연석 감독은 실제 이민세대이기도 한데 차라리 도식화된 화면의 스타일을 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좀더 진하게 녹여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TIP_영화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배연석 감독은 12살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1.5세대다. 아르헨티나 케이블방송사에서 일하며 영상에 대한 경력을 쌓았고, 국내에선 가수 박화요비, 김종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는 그의 첫 장편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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