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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녀라기보다는 술주정뱅이? <마이 쎄시걸>

로맨틱 뉴욕 지수 ★★ 전지현 능가 지수 ★☆ 리메이크 따윈 필요없어 지수 ★★★☆

<엽기적인 그녀>가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으로 돌아왔다. 경영학을 전공하며 트랙터를 만드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대학생 찰리는 우연히 본 황당한 여자 조단에게 반한다. 뉴욕 상류층의 럭셔리 걸 조단은 지하철에서 자신을 구해준 찰리에게 매번 도발적이고 엉뚱한 데이트 제안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엽기적인 그녀>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

우선 스토리는 <엽기적인 그녀>와 거의 유사하다. 단, 운명의 장소가 서울-인천 통학길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것과 조단과 찰리의 사회적 배경이 상류층과 서민층으로 나뉘었다는 것, 그리고 ‘엽기걸’이 ‘세시(sassy: 미혼에 경제적 여유를 갖춘, 성공적이며 스타일리시한)걸’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한국 관객에게 ‘엽기적인 그녀’가 전지현이었을 때 가능했던 용서의 범위가, 세시걸이 엘리샤 커스버트로 바뀌었을 때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지현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나는 미모로 모든 요란법석을 무마하지만, 이 대책없는 세시걸은 엽기녀라기보다는 술주정뱅이에 가까우니 참으로 구제되기 어렵다. 낙관적 소심남 차태현이 범생이 스타일의 제시 브래드퍼드로 바뀐 것에도 묘한 어긋남의 감각이 있다. 요령 좋은 소시민적 인물이 경영학 전공의 범생이로 변해서 술주정뱅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로맨틱하겠는가. 전지현이 만인의 연인이었다면 조단은 오직 찰리만의 연인이니 눈물날 만큼 황당한 데이트에 착취당하는 불쌍한 한 남자에 대한 연민만 남을 뿐. 신비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녀’의 매력은 매우 부족하고, 능청스런 ‘그놈’은 너무 평범하기만 하다. 게다가 독수리 오형제처럼 아들을 키우고 싶었던 난감한 여관방 주인이나 견우의 부모님과 같은 감칠맛 나는 조연들의 디테일도 없으니 영화의 골격은 더더욱 앙상하다.

결정적인 실망감은 앙상한 뉴욕의 전경화에서 나온다. 소호와 첼시, 센트럴파크 등의 뉴욕은 단지 맥빠진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구질거리는 전철 통학 길과 난감한 여관방이 한국 관객에게 애수어린 현실감을 주었다면, 매혹도 황당함도 없는 이 영화의 풀죽은 뉴욕 거리는 로맨틱에 대한 의미없는 수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tip/사랑의 상처를 안은 엽기녀로는 <콰이어트맨>과 <4.4.4>의 호러 히로인 엘리샤 커스버트가, 순진남 찰리 역에는 <브링 잇 온> <아버지의 깃발>의 제시 브래드퍼드가 각각 역할을 맡았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에서 감각적 연출력을 보여준 얀 사뮤엘 감독이 황당하고도 로맨틱한 영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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