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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앤 몬스터
2001-11-27

시사실/갓앤몬스터

■ Story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등을 만들어 30년대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았던 제임스 웨일(이안 매켈런). 20여년간의 작품활동을 끝으로, 지금은 거대한 저택에서 홀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그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그의 모든 성공과 추태까지 지켜봤던 헝가리인 가정부 한나(린 레드그레이브)다. 클레이튼(브랜든 프레이저)이라는 젊은 청년이 정원사로 일하게 되자, 동성애자인 웨일은 그의 건장한 몸에 반한다. 웨일은 자신이 할리우드의 유명한 감독이었음을 흘리며 클레이튼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웨일의 동성애 취향을 알고 잠시 멀어지기도 하지만, 환경이나 성격 등이 전혀 다른 클레이튼과 웨일은 조금씩 우정을 쌓아간다.

■ Review 몇년 만에 인터뷰하러 온 대학신문의 기자에게, 웨일은 제안을 한다. 질문 하나에 답해줄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클레이튼의 벗은 몸을 보고 비열하게 흘리는 미소는 추잡스럽다. 영국의 공주가 주최한 파티에 간 이유는 타인을 조롱하기 위해서다. 동행한 클레이튼의 넘치는 젊음을 과시할 속셈도 있었고. 과거의 거장 제임스 웨일은, 동성애 취향을 가진 괴팍한 노인일 뿐이다. 말년의 웨일은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보다도 훨씬 기괴하고, 고집스러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한때의 영광만을 간직한 주책없는 늙은이일 뿐이다. 클레이튼의 생각도 그렇다. 모델만! 이라고 못박으며 절대로 웨일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 웨일의 그림자로 발을 들이밀면서, ‘신과 괴물’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심연을 보게 된다.

웨일은 자신이 ‘공포영화의 거장’으로만 기억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보리스 카를로프와 사진을 찍는 것조차 꺼려한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포영화 이외의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운명적인 ‘공포영화’감독이다. 누구나 그렇게 인식하고, 바로 그의 삶이 그렇다. 그의 ‘참담한’ 무엇이,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낸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신에게 도전하여 인간이 아닌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증오한다. 웨일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증오하고 또 사랑한다. 클레이튼이 웨일을 동정하고 자신의 나신을 보여주었을 때, 웨일은 방독면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방독면을 쓴 ‘괴물’을, 웨일은 애무한다. 클레이튼이 거부할 것을 알면서. 그가 자신을 폭행하기를 원하면서.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을 죽였던 것처럼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한다.

모든 것은 전쟁에서 시작된 것이다. 웨일이 처음 사랑을 느낀 것도, 전쟁터의 참호 속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정찰을 나갔다가 죽었다. 그리고 몇날 며칠이고 참호 바깥의 철조망에 걸려 있었다. 눈앞에 뻔히 보이지만, 누구도 그의 시체를 수습해줄 수 없는 상황. 웨일을 포함한 전우들은 매일 아침 동이 트면 그에게 인사를 보냈다. 어이, 오늘도 안녕하신가. 그들이 택할 수 있는 태도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 그렇지 않고는 그 참담함을 이겨낼 수 없으니까. 자신이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의 시신이 썩어가는 것을 비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제임스 웨일이 “<프랑켄슈타인>은 죽음에 대한 코미디”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농담으로 연인의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증오하고, 그 처참한 자학과 분노로 ‘공포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괴물이 되지 않고 맨 정신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 감독 빌 콘돈은 87년 <시스터 시스터>로 감독 데뷔를 하고 주로 TV에서 활동하다가, 95년 <캔디맨2>를 만들었다. 공포영화감독이기도 한 빌 콘돈이 직접 각색하여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갓 앤 몬스터>는 제임스 웨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갓 앤 몬스터>의 의미심장한 플래시백은 뚜벅뚜벅 가슴속으로 파고들면서 장중한 걸음으로 제임스 웨일의 생애를 전해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지분거리는 웨일의 기행을 보여준다. 남자들에게 치근거리고 자존심과 고집으로 지탱하는 생활. 오직 한나만이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그러나 클레이튼이 그의 곁에 서 있기 시작하면서, 영화도 서서히 웨일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클레이튼의 아들이 <프랑켄슈타인>을 보는 장면에서, 괴물을 유일하게 맞아주는 사람은 시각장애인뿐이다. 마음으로 괴물을, 웨일을 보기 전에는, 결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웨일은,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원한다. 괴물을 만들어낸 괴물.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은 것처럼, 괴물은 그의 창조자를 본뜬 것이다. 창조의 비밀을 깨닫는 순간, 괴물에서 웨일로, 다시 참호 속의 젊은 군인으로 눈길이 흘러가면 마침내 클레이튼처럼 웨일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클레이튼은 빗속에서 괴물의 걸음을 흉내내며, 자신의 새로운 창조자 웨일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것은 빌 콘돈의, 제작자 클라이브 바커의 마음이기도 하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갓 앤 몬스터>의 배우

신과 악마의 얼굴들

<갓 앤 몬스터>는 99년 아카데미상에서 각색상을 수상했고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쉽게도 수상은 못했지만 린 레드그레이브는 골든글로브와 런던영화비평가협회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이안 매켈런은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LA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안 매켈런은 39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로열 국립극장 출신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주로 출연하며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서 명성을 쌓았다. 영화에서는 <리차드 3세>의 폭군 리처드 역으로 위용을 과시했고, <미션 임파서블2>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엑스맨> 등에 출연했다.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서는 미국에서 은둔중인 나치전범 역을 맡아 처음에는 그저 지치고 늙은 노인이었다가 한 소년의 폭로 위협에 시달리며 악마성을 드러내고 전염시키는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배우인 마이클 레드그레이브와 레이첼 캠프슨을 부모로 둔 린 레드그레이브는 영국에서 5대째 내려오는 배우 가문의 일원이다. 이안 매켈런과 마찬가지로 로열 국립극장에서 활동했다. 63년 <톰 존스>로 영화에 입문했고, 67년 <조지 걸>로 골든글로브와 뉴욕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96년작 <샤인>에서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데이비드를 이끌어주는 질리언 역을 맡았다. 최근작으로는 <넥스트 베스트 씽>이 있다.

<조지 오브 정글> <미이라> 등 코미디 액션물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브랜든 프레이저는 68년 미국 출생이다. 체격조건이 훌륭하고 조금 멍청해보이는 표정 덕에 코미디 배우로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갓 앤 몬스터>에서는 웨일의 내면을 이해하는 속깊은 청년을 연기한다. <영거 앤 영거>에서 클레이튼과 흡사한, 철없는 아버지 도널드 서덜런드를 보살피는 착하고 진지한 청년 역을 선보이기도 했다. 심각하고 연기력이 요구되는 역에서도 충분히 발휘할 기량을 가지고 있음을, <갓 앤 몬스터>에서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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