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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웃지 않는 최초의 영화 <신주쿠 사건>
김용언 2009-06-17

synopsis 1990년대 도쿄의 외국 이민자들은 이미 150만명에 달했다. 그중 불법 체류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건 중국인이다. 중국에서 트랙터 정비공으로 일하던 철두(성룡)도 생명을 걸고 도쿄 신주쿠에 밀입국한다. 먼저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여자친구 슈슈(서정뢰)를 찾기 위해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야쿠자 삼화회 부회장 에구치(가토 마사야)의 아내가 되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에구치의 목숨을 구한 철두는, 그 대가로 야쿠자들의 세력 다툼에 끼어들며 신주쿠 유흥가의 통제권을 얻는다.

경찰의 범상한 밤거리 순찰에도 흠칫 놀라며 빈 박스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성룡의 어두운 얼굴이 낯설다. 한마디로 <신주쿠 사건>은 성룡이 웃지 않는 최초의 영화다. 이동승 감독은 1997년경 일본 내 외국 이주민들의 기사를 처음 접한 뒤 <신주쿠 사건> 밑그림에 착수했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지하에 머물렀고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정확한 팩트 자체는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러나 이동승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조사를 이어가며 조각조각의 팩트 위에 상상 속 인물인 철두의 모진 삶을 덧붙여나갔다. 이야기는 그래서 복잡하고 길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채워넣기 버거울 만큼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예전 남대문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없는 게 없는’ 밀수품과 장물들이 오가는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흥미롭다. 또한 야쿠자 ‘삼화회’가 신주쿠 유흥가 이권 다툼을 둘러싸고 온갖 이주민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디테일도 힘주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딱 10년 뒤 한국사회가 이주 노동자들을 다루는 추악한 방식이 떠올라 겹쳐지는 부끄러운 순간이다.

문제는 이 많은 이야기들이 그다지 접착력있게 붙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철두와 기타노 형사(다케나카 나오토)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밀입국 당시의 ‘어두운 기억’에 죄책감을 느끼는 철두와 그를 존중하면서도 끝없이 압박하는 형사의 에피소드는 장 발장과 자베르 형사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철두의 어두운 측면이 입체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채 틈만 나면 (철두가 아닌) 성룡의 선하고 의리있는 모습을 강조함에 따라 철두와 기타노 사이의 긴장어린 관계는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굳이 한 줄기 따뜻한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오히려 작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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