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경이로운 감독의 시선 <나무없는 산>
김용언 2009-08-26

synopsis 어린 두 자매 진(김희연)과 빈(김성희)은 엄마(이수아)와 함께 살고 있다. 남편 없이 고단한 삶을 꾸려가던 엄마는 결국 두 아이를 지방 소도시에 사는 고모(김미향)에게 맡기고 아빠를 찾겠다며 떠난다. 고모는 신세 한탄을 하며 술만 마실 뿐 두 자매에게 무관심하다. 돼지 저금통이 꽉 차면 돌아오겠다던 엄마의 약속만을 의지한 채, 자매는 메뚜기를 구워 팔고 100원짜리를 십원짜리 동전으로 바꿔가며 조금씩 저금통을 채워나간다. 저금통이 꽉 찬 날에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매는 다시 얼굴도 모르는 시골의 외조부모에게 맡겨진다.

그 시선이 아름답다. 황량한 회색 동네의 구옥(舊屋) 담벼락만 잡아도, 시시각각 바뀌는 태양 광선과 하늘의 빛깔과 구름만 언뜻 잡아도 아름다워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불충분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두 소녀의 무구한 표정을 가득 클로즈업할 때는, 깊은 감정이 제멋대로 뭉클거린다. 카메라의 눈높이는 철저하게 소녀들에게 맞춰진다. 어른들의 무정하고 무신경한 지껄임이 툭툭 터져나올 때마다, 소녀들은 눈만 깜빡거리며 눈물을 참거나 작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거나 혹은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가 주저앉더니 복받친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순간마다 카메라는 자신이 있어야만 할 곳에 머무른 채 거리감을 능숙하게 조절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김소영 감독의 시선이 경이롭다.

칸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 부산영화제의 동시다발적 지원으로 완성된 <나무없는 산>은 연기 경험이 전무한 두 소녀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그녀들로 하여금 잔혹한 삶을 대리체험하게 하면서 그 고통을 관객에게까지 전이시킨다.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이, 삶이 끝없는 희망의 연기(延期)와 거절로 이뤄진다는 깨달음을 감추지 않는 그 용감함이 <나무없는 산>을 특별하게 한다. 어른의 짐이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에게 강요될 때, 어른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삶의 잔혹함에 감응하는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린 시절의) 김소영 감독에게, (감독의 어린 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창조된 캐릭터) 진과 빈에게 어떻게든 생존하고 성장할 권리를 주라고 고함치고 싶을 지경이다. 영화의 말미, “산으로 올라가고 싶어. 산 뒤로 내려오고 싶어. 강에서 헤엄치고 햇볕 쬐고 모두에게 잘하고 싶어”라고 노래하는 자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다보면 당신 역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