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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2009 로스트메모리즈
2002-01-29

시사실/로스트메모리즈

■ Story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는 그로부터 100년 뒤에도 조선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고 가정한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을 ‘후레이센진’(不令鮮人)이라 낙인찍고 그들의 뿌리를 뽑으려하지만 최근 잇따른 후레이센진의 테러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건은 이토회관에서 열린 이노우에 재단의 유물 전시회장에서 시작된다. 일본 정보기관 소속 사카모토(장동건)와 사이고(나카무라 도오루)는 이토회관에 난입한 후레이센진 일당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다. 조선인인 사카모토는 사건현장에서 후레이센진이 노린 것이 ‘월령’이라는 고대 유물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월령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이노우에 재단과 맞서게된 사카모토는 정직처분을 당하고 급기야 암살자의 표적이 된다. 사카모토는 차츰 일본 정보기관의 의도를 깨닫고 절친했던 동료 사이고조차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눈을 뜬다.

■ Review “이건 음모다.” 주인공 사카모토는 자신을 살인범으로 모는 일본 정보기관의 태도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선독립을 외치는 동족한테 거리낌없이 총을 쐈던 자신이 왜 이런 궁지에 몰려야 하는가? 어딘가 단단히 꼬인 사건을 풀기 위해 그는 후레이센진의 아지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뿐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 전체가 거꾸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기 위해,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총을 들어 일본인들의 심장을 겨눈다.

히치콕식 미스터리 플롯이 뼈대를 이루는 에서 서막에 등장하는 가상의 역사는 영화가 풀어야 할 숙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1909년 하얼빈역,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맞지 않는다. 이토를 호위하던 군인 중 한 사람이 총을 꺼내는 안중근 의사를 먼저 쏴버린다. 한반도의 역사가 달라진 그 순간을 100년 뒤 사카모토는 알지 못한다. ‘관객은 알고 있지만 주인공은 모르는 사실’, 히치콕이 ‘서스펜스’라고 부른 그것이 이 영화에선 어긋난 운명에 관한 서사로 이어진다.

뒤바뀐 민족의 역사는 개인의 삶에도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 조선인 사카모토는 후레이센진을 돕다 동료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뇌물에 찌든 비리경찰일 뿐이다. 순간순간 눈앞에 떠오르는 환영 또한 사카모토를 혼란에 빠뜨린다. 후레이센진들이 유물을 탈취하는 현장에서 그는 환상 속의 여자와 마주친다.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두 남녀는 망설인다. 언젠가 만난 적 있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떨리게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아버지나 연인보다 중요한 인물은 사카모토를 아끼던 동료 사이고이다. 쫓기는 사카모토를 구해준 사이고가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린 적이다”라고 내뱉을 때, 오우삼 스타일의 감상이 배어난다. 사이고는 아내와 딸을 구할 것인가, 친구를 구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인다.

의 야심은 대단하다. 헝클어진 역사, 아버지에 대한 오해, 시간이 갈라놓은 사랑, 적이 되는 친구 등 몇 가지 신화적 원형이 풍부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물기 많은 모태였다. 제작진에게 SF영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도 이런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음모를 깨닫고 엉킨 매듭을 풀어가는 주인공 사카모토와 달리 영화는 꼬여 있는 드라마를 내버려두고 요란한 총격전의 현장으로 숨가쁘게 내달린다. 드라마가 약하다? 그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의 드라마는 호흡을 못한다. 어떤 장면이 전달해야 할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 만족하는 한 등장인물의 숨결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리고 맥박을 느낄 수 없을 때 영화는 뮤직비디오의 단편적 영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연출한 이시명 감독이 잊고 있는 것은 그런 삶의 리듬이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사이고의 행복한 한때와 일본경찰의 총에 맞는 조선인 소년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사카모토의 분노를 교차편집한 시퀀스가 그 자체로는 훌륭한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나키스트>도 그랬지만 사카모토 역의 장동건은 이번 영화에서도 총을 잘 쏜다. 수십명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데 그가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순간은 상대방의 총도 휴식을 취한다. 지혜로워 보이는 두 노인(이마무라 쇼헤이와 백범 김구 선생을 닮은 또 한 사람)이 때맞춰 사카모토가 모르는 진실을 알려주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스타일의 영웅주의 영화는 실로 오랜만에 만난다. 영화가 기대고 있는 노골적인 반일정서가 차라리 사소해 보인다.

물론 가 앞서 개봉한 고예산 영화들에 비해 결점이 많은 건 아니다. 전체적 조화를 이루면 근사할 이야기들이 제자리를 못 찾는 동안 제작진의 피와 땀이 느껴지는 스펙터클이 눈길을 잡아챈다. 그러나 <자귀모> <비천무> <단적비연수> <리베라메> <무사> <흑수선> <화산고>로 이어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어떤 흐름은 에서도 여전히 뚜렷한 출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이시명 감독 인터뷰

“이념은 드라마의 극대화를 위한 소재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강우석 감독 연출부로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등에 참여했던 이시명(32) 감독은 대학 시절 <망각> <말이 씨가 되면> 등의 단편영화로 한국창작단편영화제 특별상, 신영청소년영상예술제 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원안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인데 이 소설에서 착안한 이야기인가.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김익상 프로듀서였다. 김익상 프로듀서가 <비명을 찾아서>를 읽고 구상한 이야기를 내게 전달했는데 처음엔 한 형사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스릴러 형식이 강했다. 소재가 워낙 무거워서 여기에 두 남자의 갈등, 우정, 뭐 그런 이야기를 담아보면 재미있겠다 싶더라.

액션영화를 좋아하나? 오우삼 영화나 <더 록> 같은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이 있다.

액션은 이 영화를 풀어가는데 불가피했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연출자로서 액션 위주가 아니라 드라마를 중시했고 드라마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액션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우삼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더 록>도 그렇고. 음악하는 이동준씨한테 <더 록>에서 한스 짐머가 쓴 음악 같은 걸 넣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편집과정에서 잘린 장면이 많은 것은 아닌가.

시나리오에 있는데 편집에서 잘린 장면은 거의 없다. 폭발장면 하나 정도이다. 신마다 조금씩 줄이긴 했다. 영화가 전하는 정보량이 워낙 많아서 관객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정보량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어떤 부분을 몰라도 영화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봤다.

데뷔작으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찍었는데 원래 지향했던 바인가.

이 영화 기획을 제안받기 전에도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반일정서에 기반한 영화라는 사실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소재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를 기획할 당시는 지금처럼 반일정서가 극단적이지 않았다. 촬영할 때 교과서 문제가 불거져나오고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영화의 의도에 대한 비난의 글도 올라오고.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할 것 같다. 이념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 드라마를 극대화시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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