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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삶’에 대한 아이러니 <빅픽처>
김보연 2013-07-03

겉으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족인 폴-사라 부부는 권태기를 겪고 있다. 알고보니 사라(마리나 포이스)는 폴(로맹 뒤리스)의 친구인 그렉 크레메르(에릭 루프)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폴은 홧김에 그렉을 찾아가 말다툼을 벌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그렉이 죽자 당황한 폴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성공한 변호사 ‘폴’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지우고 프리랜서 사진가인 ‘그렉’으로 살기로 한 것이다. 치밀한 계획 끝에 프랑스를 떠난 폴은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자신의 꿈인 사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찍은 사진이 그의 삶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다.

더글러스 케네디의 베스트셀러 <빅 픽처>를 각색한 영화 <빅픽처>의 프랑스 원제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한 남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제목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폴은 과거의 폴로 살 때보다 그렉으로 살 때 자신에게 훨씬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업과 가족으로도 채우지 못한 공백을 범죄를 저지른 뒤 다른 사람으로 살면서 비로소 채우는 것이다. <빅픽처>의 재미도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온다. 친구를 죽인 죄책감과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막을 길이 없지만 자유롭게 꿈을 실현하는 생활이 한편으로 그에게 충만감을 주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범죄를 통해 얻은 새로운 삶을 불륜과 살인, 은폐와 발각이라는 장르적 키워드로 조율하며 소위 ‘안정된 삶’에 대한 아이러니를 매끈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원작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오리지널 스토리를 택한 영화의 후반부는 지금까지의 톤을 크게 바꿔버린다. 타인의 삶을 살면서도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절박한 처지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불운과 그 허무함을 강조하는 쪽을 택한다. 그 끝에서 주인공이 내리는 선택은 관객이 지금까지 폴-그렉에게 보냈던 비난, 혹은 연민의 시선을 아예 차단해버리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이는 물론 원작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두 인생을 저울질하며 관객에게 흥미로운 게임을 제안하던 영화가 갑자기 룰 자체를 바꿔 전혀 다른 맥락의 결론을 내린 점은 쉽게 동의하기가 힘들다. 주인공을 서사 밖으로 밀어내고 영화는 짐짓 인생 자체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도 스스로 답을 내지 못하는 무책임한 회피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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