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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영화 <탐욕의 제국>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 연이어 사망한다. 그들은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에 방진모를 쓴 채 눈만 내놓고 근무했다. 그래도 항상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고 분진 가루가 날렸다. 점심시간은 단 40분이었다. 맑은 공기를 쐴 틈도 없이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기숙사에 들어와 자려고 누워도 기분 나쁜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얻은 첫 직장이었다. 라인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래도 첫 월급으로 100만원이 들어오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됐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믿고 삼성이라고 이야기하면 모두 알아주는, 사람들의 믿음을 믿었다. 그들은 6, 7년 많게는 10년 넘게 버티다가 회사를 나왔을 때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등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병을 얻은 것도 억울한데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발병원인이 근무 환경에 있음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산업재해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소수의 활동가들이 생존자들과 유가족을 돕지만 그들에게는 건물 앞에 서 있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은 의문을 풀어주거나 파헤치는 지적이거나 논리적인 영화가 아니다. 철저히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기에 적잖이 감정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함께 싸우자고 외치는 영화도, 그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에 면죄부를 얻으려 드는 영화도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그저 차갑도록 담담히 지켜본다.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가 다큐멘터리를 채우도록 하되 스스로는 이미지로 발언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힘이 빠진 채 죽어가는 사람을 봐야 하고 두발로 서는 힘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힘을 박탈당한 한 여자의 생존기를 봐야 한다. 또한 죽어서도 두눈을 동그랗게 뜬 채 편하게 눈감을 수 없는, 죽은 이들의 눈동자를 한참 들여다봐야 한다. 이미지는 때로는 ‘함께 싸우자’는 외침보다 힘이 세다. 이 영화가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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