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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녹야’ 판빙빙, 이주영, 경계 너머로 번지는 감정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3-11-02

배우 판빙빙이주영의 만남만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녹야>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순회하며 기분 좋은 항해를 마쳤다. 두 배우의 뜻밖의 만남은 영화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펼쳐진다. 인천 여객항 보안검색대에서 일하는 중국인 진샤(판빙빙)는 마약 밀매업에 몸담고 있는 초록 머리 여자(이주영)를 우연히 만난다. 너무도 다른 환경에 성격, 나이, 국적마저 다르지만, 그들은 거부할 수 없는 감정적 이끌림을 느낀다. 이내 둘은 우연을 넘어 운명에 가까운 동행 길에 오른다. 마약 밀매에 얽힌 일련의 장애물을 돌파하며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의 삶을 구해낸다. 영화엔 국경도, 언어의 경계도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두 배우의 진정 어린 연기로 되살아났다.

- 판빙빙 배우가 이주영 배우에게 직접 캐스팅 제의를 한 것으로 안다.

판빙빙 예전에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를 보고 주영이를 알게 됐다. 정말 개성 넘치고 연기를 잘하더라. 그래서 한슈아이 감독님과 상대역을 물색하던 중, 이 배우로 정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진샤와 초록 머리 여자는 겉보기에도 매우 다른 분위기를 내야 했기에 우리 둘의 배치가 더욱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손편지를 써서 출연 제안을 했다.

이주영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배우로서 어떤 결심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선 몇 장면의 수위가 걱정이었다. 또 내가 이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시나리오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감독님을 뵙고 나니 마음이 기울었다. 영화의 메시지, 이야기, 의미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깊게 설명해주셨다. 더해서 판빙빙 언니가 준 편지까지 받았고, 결국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 진샤와 초록 머리 여자는 무척 다른 성격이지만 금세 가까워진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이주영 초록 머리 여자는 자신의 감정 변화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인물이어서 진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숨기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첫 만남이었던 여객선 검색대 장면에서부터 서로간의 긴장감이 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판빙빙 언니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덕에 감정의 고저가 잘 표현된 것 같다. 만족스럽다.

판빙빙 진샤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고, 혼자 숨어서 조용한 삶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가짜 신분으로 가짜 결혼을 했고, 중국과의 교류도 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인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초록 머리 여자를 보면서 자극을 받고 고민과 혼란을 느낀 것 같다. 꼭 애정의 감정이 아닐지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에게 끌리는 한편으론 도망치고 싶은 애매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 두 인물의 만남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 거라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이주영 관객들이 <녹야>를 보고 나면 두 사람의 관계성이 어떻게 갈무리되고 정리된 것인지 궁금증을 표할 수도 있겠다. 다만 감독님과 판빙빙 언니, 나 역시 진샤와 초록 머리 여자의 만남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국적, 나이, 닥친 상황 등 모든 외적 요인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인생의 한 부분을 온전히 바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정말 중요한 의미라고 여겼다.

판빙빙 두 인물의 관계와 동행 여부가 시시각각 변하는 구성도 <녹야>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각자의 해석과 상상을 할 수 있게끔 많은 부분을 열어뒀다. 주영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초록 머리 여자를 통해 진샤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 진샤가 어떻게 구원받았다고 느꼈는지.

판빙빙 <녹야>의 대사 중에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일이 훨씬 어려울 때가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누구나 큰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진샤는 그 용기를 초록 머리 여자에게 얻은 셈이다. 초록 머리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점차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이게 바로 진샤에게 주어진 구원인 것 같다.

- 둘은 한국어, 중국어뿐 아니라 수어로도 소통한다. 여러 언어로 연기하는 과정은 어땠나.

이주영 현장에서 통역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만 연기의 과정이나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국가나 언어의 다름과 정말 무관한 일이더라. 한국인만 있고 한국어만 사용하는 현장이라고 해도 진심으로 소통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반면에 <녹야> 현장에선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관계에 공감하고 나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촬영이 아닐 땐 언니와 영어로 대화했다. 언니가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다 보니까 대체로 내가 귀를 쫑긋해서 듣는 역할이었다. (웃음)

판빙빙 주영이와 통역사 두 분, 감독님까지 해서 5명이 정말 연애하듯 늘 붙어다녔다. (웃음) 하지만 영화 촬영 현장에선 눈빛과 손짓, 마음으로 통하는 것들이 언어를 초월하곤 한다. 주영이도 <브로커>를 찍어봤고 나도 여러 해외 현장 경험이 있으니 함께 아는 사실이다.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진샤와 초록 머리 여자가 욕실에서 대화하는 부분이다. 초록 머리 여자가 길게 독백하면서 본인의 과거를 밝힐 때다. 둘 사이에 욕조 커튼이 쳐져 있어서 촬영 당시에 주영이의 연기를 직접 보지 못했는데, 말의 뉘앙스만 들어도 떠오르는 표정과 고통이 있었다. 그런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녹야>를 처음으로 보니,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더라. 우리의 감정이 정말 잘 통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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