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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른 김장하’ 김현지 감독, 김주완 출연자,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3-11-23

참된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진 않을 테고 나름 각자의 정답이 있겠다. 그러나 <어른 김장하>가 어른의 정의에 아주 중요한 본보기란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을 인권운동, 장학생 육성, 지역 언론 지원 등에 힘써온 김장하 선생의 삶은 분명한 어른의 모습이자 하나의 사회안전망이었다. 이에 MBC 경남의 김현지 PD, 진주 지역의 베테랑 언론인 김주완 기자가 합심하여 김장하 어른의 삶을 뒤쫓았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어른 김장하>는 2023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에 올랐고, 극장판 개봉으로까지 이어졌다. 김현지 감독과 김주완 출연자를 만나 매체 인터뷰에 임하지 않는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하며 겪은 우여곡절, 지금 시대에 김장하 선생님의 삶이 주는 의미 등을 물었다.

- 협업의 계기는.

김현지 어떤 술자리에서 우연히 김장하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설마 이런 사람이 있겠나’ 싶었는데 다음날 검색해보니 그가 펼친 선행이 다 진짜더라. 기획물로 다뤄보고 싶단 생각이 바로 들었고, 인터뷰를 안 하시는 분이라 해서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인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산만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키맨이 필요했고, 예전부터 존경하는 언론인이었으며 유일하게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 글을 쓴 김주완 기자에게 연락하게 됐다. 공동 취재와 자료 공유에 선뜻 응해주셨지만, 단 한 가지 “나는 배우가 아니니 연출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다.

김주완 김현지 감독의 지난 작업들을 보니 취재원을 상업적으로 적당히 다루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분야가 다소 다르니까 상호 보완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았고 마침 퇴직도 했던 때여서 타이밍이 좋았다.

- 어떤 상호 보완이 있었나.

김주완 신문기자다 보니까 취재하면서는 주로 사실 확인에 중점을 둔다. 사람을 만나면 몇년생인지, 어떤 일이 있으면 몇날 몇시에 일어났는지부터 따진다. 반면에 김현지 감독은 사람을 만나서 “그때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라고 질문해줬다. 작품의 감성적인 측면, 관객들이 느낄 감정의 문제를 잘 보완해줬다.

김현지 오랫동안 방송을 준비했더라도 일회성 방영에 그치고 나면 큰 허탈감을 느끼곤 했다. 또 영상물은 분량의 제약도 있지 않나. 이번에도 첫 가편집본은 5시간이었다. 줄여가는 과정이 늘 힘들다. 그런데 이번 기획의 과정과 결과는 기자님의 책 <줬으면 그만이지>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굉장히 든든했다.

-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한 과정이 궁금하다. 어떤 비결이 있었는지.

김현지 선생님의 활동 반경과 관심사에 맞춰 은근슬쩍 접근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오래 활동하신 형평운동(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인권운동, 신분 차별 철폐 운동)을 다루고 싶다는 식으로 다가가서 몇 마디 말씀을 부탁하는 거다. 그러다가 차도 한잔 마시고…. (웃음) 물론 가장 중요한 건 김주완 기자의 존재였다. 지역에서 훌륭한 언론인으로 이름난 분이니, 김장하 선생님도 ‘설마 이 사람들이 헛짓은 안 하겠지’란 믿음을 주셨던 것 같다.

김주완 내 개인의 기술은 없다. 다만 내가 경남도민일보라는 매체에 몸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지역신문 중에 유일한 시민주 언론이었고, 김장하 선생님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셨던 듯싶다. 최소한 기자들이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윤리적으로 욕먹을 행동은 안 해왔던 부분을 알아주시지 않았을까.

- 1991년부터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하려고 했다. 오랜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기도 한데.

김주완 2015년에 김장하 선생님의 허락 없이 선생님에 대한 글을 썼고, 그 후에라도 양해를 여쭙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찾아오는 사람을 내치는 분은 아니셔서 함께 녹차를 마시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만남이 물꼬가 돼서 본격적으로 취재에 임할 수 있었다. 곧바로 선생님 주변에 “김주완 기자가 선생님 글을 허락 없이 쓰고도 안 쫓겨났다더라”라는 소문이 돌았고, 주변인들이 먼저 취재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참석하는 행사 뒤풀이나 식사 자리 같은 곳에 자주 가기 시작했다. 그런 데서 슬쩍슬쩍 인사드리고 옛이야기를 여쭈면서 취재를 이어갔다.

- 취재 도중에 만난 의외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었다면.

김현지 취재하다 보면 뜻밖의 실패나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디 한곳에 가서 취재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다른 선행이나 일대기가 쏟아져나왔다. 그런데도 모든 취재원이 정제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정리해주셔서 어떤 분들은 다 미리 섭외한 분들이 아니냔 말씀도 하시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들 오랫동안 맘속에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말과 생각을 정리해두셨던 것 같다.

-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랐나

김현지 선생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지탱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너희들이 사회의 기둥이니까 책임감을 나눠 가져라”라는 말씀으로 들리더라. 단순히 김장하 선생님의 삶이 멋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선생님은 은퇴하셨으니 그 짐을 우리가 이어받고 선생님이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천분의 일의 김장하, 만분의 일의 김장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김주완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한테도 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선생님을 완전히 따라 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선생님 덕에 이렇게 작은 부분이나마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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