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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겨울의 언어’ 김겨울 작가, 나를 던지는 말들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3-11-30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배우고 <책의 말들>을 넘어 <겨울의 언어>를 짓는 작가, 유튜브 <겨울서점>의 운영자,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의 DJ, 클래식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두드리고 춤을 추는 예인, 그러나 눈 밝은 친구들인 이슬아, 이훤 부부와의 수다에 따르면 오히려 무인의 성정에 가까운 김겨울에겐 다재다능이라는 수식어가 식상할 지경이다. <겨울의 언어>는 그처럼 수많은 김겨울의 다양태를 담고 있는 여러 글들을 엮은 산문집이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씨네21>의 ‘디스토피아로부터’와 <릿터> <자음과 모음> <보스토크> <서울 리뷰 오브 북스> 등 각종 지면에 수록한 원고를 재배열하고, 가장 최신의 김겨울이 담긴 새 글을 일부 더해 총 3부로 구성했다. “깊이 잠수하거나 웃기고 싶어 안달난 두개의 다른 자아”가 때로 팽팽하게 교차하는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분명 산발적으로 쓴 글들의 묶음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연마하려는 사람의 열망이 일관되게 읽힌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일찍 이룬 것이 많은 출판계의 스타가 아니라 “자신을 휩쓸어도 좋을 바람” 앞에 선 사람, “책 앞에 엎드린 사람”,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삶/책을 받아들이며 열린 세계의 자녀”로 남으려는 사람을 만난다.

- 7번째 단독 저서 <겨울의 언어>는 김겨울이라는 작가를 낯설게 다시 보도록 하는 책 같다. 사색적인 1부 ‘새겨울’의 글들이 특히 그렇다.

= 확실히 글을 쓸 때의 자아는 유튜브나 방송에서 비치는 모습보다 낮게 가라앉은 무엇이다. 1부에 배치된 글들을 두고 이혜인 편집자는 약간 산문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최근에 쓴 글들일수록- 이번 책을 위해 새로 쓴 글 6편을 포함해- 언어 힘에 집중해서 글을 만졌는데, 개인적으로는 무척 마음에 드는 방향성이지만 대중성이나 가독성 측면에서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기도 하다.

- 1부의 글 <4000주>에서 화자는 매일 아침 작은 죽음에서 깨어나 조용한 축하 만찬을 즐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비탄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거쳐 자신의 “마지막 아침 식사가 언제일지 가늠”해보는 사람이라서다. 김겨울에게 부과된 건강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의 이미지, 그로부터 기대할 법한 자기계발적 루틴과는 사뭇 다른 맥락이다.

= 그게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질문이니까. 죽음을 가정하고 하는 질문은 사람을 발가벗기는 데가 있다. ‘왜 살지?’가 너무 절박한 질문인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그냥 습관처럼 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수락하고 거절할 때, 특히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겨야만 한다. 말하자면 인테그리티(integrity), 자기 통합성을 추구하는 과정일지도.

- 오늘 아침도 충분한 만찬이었나.

= 전혀…. 어제는 감기로 몸져누웠고 오늘 아침엔 급하게 시리얼 말아먹고 나왔다. 그리고 인터뷰 끝나면 집에 들렀다 바로 대학원 수업에 가야 한다. (웃음)

- 작가, 유튜버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다양한 활동으로 분주하던 상황에서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일을 줄이고 공부를 하기로 한 이유는.

= 공부는 하면 할수록 엄청 자책하게 되는데 그게 재밌다. 내가 멍청이라는 사실이 나를 너무 기쁘게 한다. 아주 무한히 반짝거리는 세계의 입구를 열고 들어가서 초심자의 흥분을 누리는 일이 좋다. 그리고 책에서도 묘사했듯이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정복이란 걸 할 수 없는 세계의 무한성에서 어떤 위안을 얻는다.

- 바로 직전의 두 책이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와 <아무튼, 피아노>였으니 공부하는 요즘엔 떡볶이, 피아노와의 관계가 어떤지도 궁금한데.

= 둘 다 자제 중이다. 들으면 치고 싶을 테니 피아노곡을 적게 듣는다. 또렷한 정신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으니까 졸린 음식을 먹어선 안되고 그래서 떡볶이도 줄였다. 평일엔 참다가 주말에 가끔 먹는다. 한마디로 브레인 포그를 경계하는 중이다.

- 유튜브 <겨울서점> 채널과 MBC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두개의 커뮤니티가 김겨울에게 갖는 의미는.

= 처음 <겨울서점>을 열 때의 바람은 쉬는 시간에도 항상 책만 읽고 있는 애들, 그러니까 나같이 한반에 한명쯤 있는 애들이 전국적으로 모이면 그래도 꽤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지금은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어?’ 하고 기웃거리는 교실의 다른 친구들까지 모인 훨씬 크고 다양한 커뮤니티가 되었다고 느낀다. 라디오는 확실히 내가 호스트로서 게스트를 잘 맞이하고, 잘 듣고, 잘 리액션하는 역할이 더 중요한 매체다. 라디오에선 훨씬 더 타인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그것에 귀 기울이게 된다.

- 이번에 새로 쓴 글들 중 지금의 김겨울을 가장 생생하게 반영하는 글이 있다면 무엇인가.

= <완벽한 삶-책>에서 쓴 대로, 단 하나의 정답을 찾지 않고 텍스트와 텍스트를 거치면서 내가 끊임없이 변하고 확장되는 과정을 따르려 한다는 점에서 나는 책과 삶을 비슷한 방식으로 대하는 것 같다. 프리랜서 연차가 차면 찰수록 ‘그냥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나갈 수 있겠다’ 싶은 관성의 유혹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되어가는 대로 두지 않고 스스로를 방황에 노출하고 싶다는 아주 오랜 다짐에서 쓴 글이다. 최후의 승리를 경계하고, 책이든 타인의 삶이든 계속 열려 있는 것, 내가 나에게 머무르지 않아야만 오로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이 내 삶에선 아주 중요한 기반이다. (이어지는 <삶을 좀 아는 사람>에서 작가는 이렇게 쓴다. “세포는 계속 죽고 태어난다. (…) 하루에 3300억개가 교체되고, 한두해 정도가 지나면 몸 대부분의 세포가 교체된다. (…) 이것들은 결단코 나지만 ‘나’는 조금씩 바뀌어왔다. 이 ‘나’는 저 ‘나’를 향해 착실하게 항해해왔다.”)

- 책으로부터 삶의 정답을 구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도 줄곧 접해왔을 텐데, 그것에 대한 가이드도 되어주는 말이다.

= 책을 많이 읽어서 인생을 바꾸고 부자가 되고, 그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읽기가 상호작용이란 것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독서가 나는 가만히 있는데 책만 일방적으로 쓸모를 내놓는 그런 행위가 아니라 결국은 대화라는 것, 어쩌면 귀를 열어놓고 듣는 일에 더 가깝다는 것이 독자라는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축복 아닐까. 그런 경험이 본인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는지 알게 된 사람은 결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여러 매체에서 쓰고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무게감을 어떤 방식으로 감당하고 있나. 가령 이번 책에선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춤추는 영상을 그만 올려야 하나?” 고민하는 김겨울도 담겨 있다.

= 고민은 늘 돌아오지만 결론도 늘 같더라. 사람들의 기대에 관해 너무 깊이 생각하게 될 땐 박막례 할머니가 남긴 유명한 말씀을 지침 삼는 게 좋다. (웃음) 본인의 장단에 맞게 춤추면 그 박자에 맞는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같이 놀 거라는 말.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려고 한다.

- 마지막으로 시를 쓰는 김겨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 높은 확률로 다음 책은 시집이 될 것 같다. <겨울의 언어>는 시로 가는 징검다리 같은 책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써야 할 시들을 째려보고 있다.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시에 대한 자의식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시집을 묶어야 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내려놓아야 할까? 내게 시를 쓸 자격이 있나? 모든 것들이 약간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시도 마감을 잘 지키며 쓸 것이고, 산문처럼 정확한 전망을 내다보기보단 언어가 나를 이끄는 방향으로 좇아가보고 싶다.

글의 요구

<겨울의 언어>에서 김겨울은 피아노 콩쿠르에 매진하던 유년기, 괴로웠던 입시 기간, 곡을 쓰고 노래하던 20대 초반 등 과거에 많은 시간을 쏟았으나 지금은 나를 대표하지 않는 것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삶의 의미망 안쪽으로 거두어들인다. 그것은 “에세이에 담긴 ‘나’가 실제의 나인 동시에 글 자체의 요구이기도 해서”다.

“비비언 고닉이 <상황과 이야기>에서 썼듯, 화자가 거리를 두면서 하나의 글 안에서 상황과 이야기를 완결성 있게 발생시킬 때 생기는 힘이 있다. 특히 이 책에 새롭게 쓴 6편 중 1부에 나란히 실리는 3개의 글(<완벽한 삶-책> <삶을 모르는 사람〕> <삶을 좀 아는 사람>)을 쓸 때 글이 나를 당겨주는 대로 한 발짝 더 나아가보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읽는 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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