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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욘드 유토피아’ 매들린 개빈 감독, 실질적 변화가 촉진되길 바라고 있다
이자연 2024-02-08

탈북민의 참혹한 현실을 기록한 <비욘드 유토피아> (공동배급: 홈초이스,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외) 는 지금까지 낙원이라 믿고 자란 국가를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목숨 건 비밀스러운 탈출, 오직 돈으로만 움직이는 무자비한 중국 브로커, 절실함을 악용한 거짓말과 체포와 동시에 이어지는 가혹한 처벌까지. 유토피아를 벗어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공포스럽고 지난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매들린 개빈 감독은 우리가 지금 직면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객관적인 언어와 시각으로 문제를 응시한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새로운 낙원의 가능성은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 곳에 존재할 것이다.

- 처음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북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탈북자의 현실과 처지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리서치를 해보니 실제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과정에 조국의 진실을 외부 세계에 알리고자 목숨을 걸고 위장 촬영을 감행해온 북한 주민들의 비밀 영상을 우연히 발견했다. 순간 북한 사람들의 심장 박동이 내 안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중 미디어에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부재한지도 체감했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열망 같은 게 솟아났다.

- <비욘드 유토피아>는 북한에 남아 있는 이소연씨 아들이 탈북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극한 경계 속에서 북한 내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던 구조와 절차가 궁금하다.

= 사실 북한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북한을 넘나드는 정보 하나하나에 비용이 발생하는데 은행이 없기 때문에 직접 돈을 보낼 방법도 없다. 그래서 최소 2개국의 브로커가 필요하다. 브로커를 만나도 돈을 받고 말도 안되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보가 정확한지 계속해 확인해야 한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소연씨의 아들이 탈북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를 북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 정보가 진실인지 확인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 영화는 이러한 현실에 쉽게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좇아간다.

= 이 상황 자체가 지닌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의 분열된 충성심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소연씨의 아들은 조국을 사랑했고 옹호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탈출을 감행하는, 극한상황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위험을 만들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제작팀 중 누구도 중국에 입국하지 않았다. 김성은 목사도 20년 넘게 탈북민을 도우면서 북한 정권에 알려진 만큼 납치 가능성과 경고를 받아왔다. 촬영팀 누구도 중국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취재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때 김 목사가 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촬영분을 제작할 수 있었다.

- 북한 탈북민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지나치게 연민하지도 지나치게 관망하지도 않는다. 인터뷰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려 했나.

= 보통 호기심과 질문이 가득 찬 상태에서 인터뷰에 임하지만 나의 선입견이 대화의 흐름을 좌우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물론 나도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다. 하지만 나를 이끌어낸 주제 안에서만 탐구하려 한다. 사적인 궁금증은 지양하는 편이다. 이처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비욘드 유토피아>에 특히 중요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북한과 남한 사이엔 깊은 골이 생겼다. 북한 주민은 미국과 남한이 자신의 주적이라 교육받으며 자랐고, 미국인들은 북한 주민에 대한 온갖 편견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서양인에 대해 불신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믿음과 신뢰를 주고자 했다.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접근하는 게 일종의 임무였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것처럼 서로를 알아갔고, 결국 인터뷰이들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 탈북민 이소연씨의 사연이 무척 인상적이다. 아들의 탈출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애수가 느껴졌다. 국가적 현실만 조명하기보다 개인의 이야기로 구체적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다면.

= 구체적일수록 더 보편적이다.’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문장이다. 사람을 숫자나 익명의 대중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개인에 집중할수록 스토리는 더 강한 힘을 갖는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도 자신과 비슷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더 크게 공감한다. 특히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세상에 꼭 필요한 연민과 이해가 생겨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소연이라는 인물은 인간이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소연이 엄마로서 느끼는 슬픔과 고통을 전세계 여성들이 알아줄 거라 확신했다. 실제로 다양한 국가의 여성들이 소연씨를 안아주고 지지해주고 아픔을 나눠주기도 했다. 뜨거운 격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조국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이 실상을 알고 스스로 그곳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어떤 나비 효과를 만들길 바라나.

=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삶이 힘들지만 다른 국가 사람들의 삶이 더 가혹하고 힘들다고 세뇌당하며 자란다. 그러니 많은 사회적 어려움이 잇따르지만 그곳만이 유토피아라 믿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김씨 정권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속에서 이현서씨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거대한 가상 감옥에 살고 있었다”고. 주민들이 그 가상 감옥에 갇혀 있는 한 북한 주민들은 실재하는 유토피아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비욘드 유토피아>를 통해 각국 정부와 시민들이 북한과 중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실질적 변화가 촉진되길 바라고 있다.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탈북자를 강제로 북송하는 중국의 정책 또한 이제 사라져야 한다. 중국의 정책이 바뀌면 북한의 체제 또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중국 내의 변화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기 때문에 외부인인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미사일, 독재자, 퍼레이드, 매스게임 등 표면적인 키워드에 현혹되지 않고 진짜 필요한 살아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현대 시민들의 변화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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