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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
김혜리 2006-03-17

수은주가 35도를 가리키는 비현실적인 2월의 일요일. 방콕의 수쿰윗 99 구역에 자리한 프로덕션 ‘필름 팩토리’의 문을 두드렸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은 촬영 중이었다. 그가 찍고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CF였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에게 CF는 기분전환용 일거리가 아니다. 낙숫물이 고이길 기다리듯 장편영화의 투자를 끈기있게 추진하면서 부지런히 CF를 연출하는 것은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일상이다. CF는 그에게 생계 기반일 뿐 아니라 장편영화에서 시도하려는 기법을 테스트해보는 호사스런 실험실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착수한 장편영화에서 시행착오를 범하는 사치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광고주는 그 사실을 아냐?”고 묻자 감독은 의젓한 개구쟁이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물론 낙숫물이 대야를 채우려면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하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 이후 4년 걸려 두 번째 영화 <시티즌 독>(2004)을 내놓은 위시트 사사나티앙은 아직 세 번째 영화 <핫 칠리 소스>의 스케줄을 기약할 수 없다.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영화들도 더디게 시간을 새긴다. 그의 영화들은 대사가 있는 무성영화라는 평을 얻곤 한다. 극중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느냐보다 어떤 색깔로 칠해진 방에 어떤 구도로 서 있는지가 종종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최초로 공식 상영된 타이영화로 기록된 그의 입봉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1950년대 타이영화와 할리우드 서부극의 양식과 정서를 시침 뚝 떼고 재현하는 뚝심으로 관객을 항복시켰다. 서구의 평자들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빗대어 그의 영화에 부랴부랴 ‘톰양쿵 웨스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시골 청년이 방콕에 상경해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도시의 소시민으로 길들여지기까지를 그린 두 번째 영화 <시티즌 독>은 ‘방콕판 <모던 타임즈>’라는 반응을 얻었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은 “따뜻한 슬픔이 깃든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버스터 키튼의 그것보다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주인공 포드는 채플린의 작은 떠돌이보다 훨씬 순응적이고 체념도 빠르다. 아마도 그건 포드가 환생을 믿는 타이 청년인 때문이겠지만. 중간중간 스탭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눈빛과 말투는 호젓했다. “너무 열렬히 찾으면 도망치는 것들이 있다”는 <시티즌 독>의 슬로건은 감독의 일기장 속표지에 씌어진 다짐 같았다.

-CF 출신 감독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평론가들은 당신이 시각적 화술에 능한 동시에 상업적 감각이 발달해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타이 국내의 평가는 훨씬 인색하다. CF 출신이라 진지함이 없고 단편적인 영상미에 치우치는 예술성 낮은 감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1999년 흥행작 <낭낙>의 각색 작가로 참여한 것이 영화 경력의 시발점이었다. 전통적인 원혼 이야기를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로맨틱하게 재해석한 것이 <낭낙> 각색의 핵심인데 당신의 의견도 반영된 결과인가. =타이에서 공포영화는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보는 주류 장르다. 그래서 <낭낙>의 감독과 나는 거꾸로 드라마쪽에 무게 중심을 두려고 결심한 거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할리우드 서부극 또는 산을 폭파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액션이 등장하는 1950년대 타이영화 양식을 차용했다. 기존의 타이영화와 차별되는 참신한 영화를 추구한 신인으로서 모던한 영화양식보다 오래된 스타일에 끌린 이유에 호기심이 간다. =요즘 영화보다 옛날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가 예술적으로나 사회 전반에서 최고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건축도 영화도 1970년대부터는 혼합과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본다. 디스코와 가라오케의 1980년대는 얼마나 끔찍했나. 홍콩영화건 할리우드 영화건 타이영화건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옛날 영화’라는 이름으로 국적에 상관없이 한 덩어리로 내게 영감을 주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공식 상영된 타이영화였다. 그런데 칸영화제쪽이 재편집을 요구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그 요구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지는 않았나. =재편집은 배급사의 요구였고 칸에서는 온전한 편집본이 상영됐다. 문제는 미국 배급사 미라맥스였는데, 그들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필름을 멋대로 재편집해서 마지막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었다. 그것도 극장 개봉이 아니라 선댄스영화제에 상영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강간당한 느낌이었다.

-당신의 두 장편은 스타일의 일관성이 인물이나 여타 요소보다 중요한 영화다. 이것은 많은 영화적 요소들이 선험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뜻이며 바꿔 말하면 배우에게 운신의 폭이 좁을 수도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배우 캐스팅과 연기 연출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보통 TV 드라마 출신의 타이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를 하는 일이 많다. 나는 내 영화 스타일에 맞는 신인을 캐스팅해 감독의 방식대로 훈련한다. 예컨대 <시티즌 독>의 마하사무트 분야락은 극중 포드처럼 말이 느리고 과묵한 성격이다. 한편 진 역할의 상통 켓우통은 진과 비슷하게 예민하고 조증이 있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외국계 여배우 스텔라 말루치를 기용했는데, 그것은 1950년대 영화들이 타이영화나 외국영화나 모두가 인도 여성 같은 짙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배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화들을 포함해서 타이영화를 보면 타이 국민들에게 방콕은 단순히 일반적인 수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 같다. 주인공이 방콕으로 떠나는 것이 내러티브의 대전환을 이루는 경우가 잦다. 방콕은 당신들에게 어떤 곳인가. =타이는 개발이 심하게 편중돼 방콕과 다른 지방도시의 차이가 크다. 돈을 벌거나 공부하고 싶거나 다른 식으로 발돋움하고픈 젊은이들은 모두 방콕으로 온다. 대학도 모두 방콕에 몰려 있고 졸업 뒤 일자리도 거의 다 방콕에 있다. 그래서 방콕은 실체와 무관하게 ‘낙원’ 같은 상징성이 있다.

-당신의 동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방콕에 대한 혐오감을 여러 번 표명한 바 있고,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국적으로 인해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영화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방콕 토박이인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방콕은 수도가 된 지 200년밖에 안 된 신도시다. 방콕 시민의 90%는 중국 혈통과 섞여 있고 나의 경우 거의 100% 중국 혈통이다. 나는 혈통이나 국적보다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콕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는 인간도 미울 때가 있듯이 이 도시도 교통체증, 물신주의 등의 어둠이 있다. 하지만 <시티즌 독>의 주제도 그렇듯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은 나의 생각에 달렸다.

-<시티즌 독>은 “방콕에 가면 꼬리가 생긴다”는 할머니의 예언으로 시작한다. 꼬리는 부패나 타락의 상징으로 짐작되는데, 나중에는 방콕에서 유일하게 꼬리가 돋지 않은 시민이던 포드에게도 꼬리가 돋는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그것을 한탄할 만한 전락으로 묘사하지 않고, 삶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긍정한다는 점이다. =꼬리가 의미하는 것은 일종의 트렌드다. 남들이 좋다면 너도나도 소유하고자 하는 물건 같은 거다. 그런데 유행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급기야는 꼬리가 없는 포드가 스타가 된다. 당신 말대로 <시티즌 독>은 그것을 긍정한다. 포드는 내게 이상형의 인간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에게는 꼬리가 돋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의 세계는 보존된다.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한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인간 아닌가.

-<검은 호랑이의 눈물>이 전형적인 비극적 엔딩이었다면 <시티즌 독>은 비전형적인 해피 엔딩이다. =실제로도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갈 것을 인정한 셈이니까.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한줄로 이어지는 전형적 줄거리를 갖고 있는데, <시티즌 독>은 다양한 캐릭터의 에피소드들이 사슬처럼 사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부인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들었는데 이야기에 살을 붙여간 과정이 궁금하다. =방콕을 조롱하는 유머들을 먼저 구상한 다음 그들을 사랑이라는 한줄의 주제로 꿴 결과가 <시티즌 독>이다. 내용은 러닝타임에 맞추기 위한 생략을 제외하면 엔딩을 포함해 원작소설에 충실하다.

-짧은 출장이었지만 현세에 집착하지 않는 타이 사람들의 심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 찾아 헤매면 도망간다. 그러나 찾기를 멈추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는 <시티즌 독>의 슬로건은 타이 특유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일상생활에서 나온 이야기다. 어떤 물건을 쓰려고 찾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다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불쑥 눈에 보이는 일이 있지 않나? 하지만 타이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해도 좋다. 타이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확의 때를 기다리는 문화를 갖고 있다. 서둘러도 소용없는 것이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마치 영화를 모방한 극장 간판 그림을 다시 모방한 듯한 영화였다.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영화라 하면 독특한 팔레트부터 떠오른다. 나비파 화가인 고갱이나 보나르의 그림 같은 색감이다. 전작과 <시티즌 독>의 색채를 내는 기술적 과정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색채 구조는 타이 전통 민간 예술에서 색의 영감을 받았다. 보통의 타이 사람들은 예술적 지식이 없어서 쓸 수 있는 가장 많은 가짓수의 색깔을 쓰곤 한다. 시골의 극장 간판이 예다. 글씨 한자에 27가지 색깔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색의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술적으로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CG를 쓰지 않고 옛날 영화의 촬영기법을 그대로 시도했다. 반면 <시티즌 독>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했다. 텔레시네(필름을 비디오로 전환하는 작업)를 떠서 색을 일일이 보정하는 과정을 ‘포스트 방콕’(칸타나 스튜디오의 후반작업 전문회사)에서 했다.

-색 보정뿐 아니라 <시티즌 독>에는 인형 애니메이션, 초점거리가 다른 렌즈, 소도구 등을 동원해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 혹시 4년에 한번 영화를 만들다보니 축적된 아이디어를 한번에 쏟아낸 건 아닌가. =(웃음) 그보다는 원작소설의 비현실적 에피소드에 충실하려다보니 동원된 기법들이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이 <시티즌 독>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타이 감독들은 동료의 작품에서 제작자 역을 맡는 일도 드물지 않다. 동세대 감독과 서로의 창작에 영향을 끼치는 커뮤니티가 존재하나. =펜엑 라타나루앙, 지라 말리쿤, 용유스 통큰턴, 논지 니미부트르 등 4∼5명의 감독과 가깝고 술자리도 자주 한다. 필름 팩토리에서 함께 일하는 펜엑은 사무실이 바로 여기 위층이다. 그는 목소리가 좋아서 내 영화뿐 아니라 많은 CF에서 내레이션으로 올리는 수입이 짭짤하다. “하이네켄” 이렇게 딱 한마디해서. 물론 부럽다. (웃음)

-당신의 영화를 포함한 일련의 타이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개인이나 제도와 빚는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여 상대를 파괴하거나 자신을 파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달관이나 포용의 대단원이 많다. 반면 대부분의 할리우드영화나 한국영화는 적을 부수거나 자폭하는 길을 간다. 피상적인 연상이지만, 타이 국민에게 피식민지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역사적 경험 차이가 아시아 각국 영화에 차이를 남겼을 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타이는 식민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욕구를 치열하게 표출하고 끝까지 싸우는 의지가 엷다. 또 농경사회인데다가 천혜의 환경이라 논에는 항상 벼가 풍성하고 물속에는 물고기가 그득해 굶주림을 경험하지 않았다. 게으르다기보다 “더이상 바랄 게 있나?” 하는 안분지족의 심성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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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박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