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이 눈을 감았다. 환하게 빛나던 미소가 사라지고 조금은 불편한 어둠이 찾아왔다. ‘아직은 사랑을 모른다’고 노래하던 소녀가 이젠 ‘사랑따윈, 필요없다’고 말한다. 냉소적인 어투에서 아련한 상처가 느껴진다. <댄서의 순정> 이후 1년여. 학교로 돌아갔던 문근영이 생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다. 영화의 제목은 <사랑따윈 필요없어>, 역할은 세상에 마음을 닫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 민이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딱 저 같았어요. 무언가 세상에 의미를 잃어버린, 하지만 사랑을 바라는 모습. 그냥 제 마음을 민이로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올해 초 문근영은 대학입시와 관련 구설에 시달렸다. 비난의 요지는 그녀가 정시로 대학에 가겠다고 말한 뒤, 수시로 입학을 했다는 것. “오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크게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의도가 조금 달랐다는 거, 이러면 변명이 되는데. (웃음) 그래도 사람의 미래라는 게, 누구도 알 수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물론 그래서 더 조심해야겠죠.” 문근영은 이번 일로 처음으로 안티를 경험했다. 국민여동생이란 칭호로 받아들이기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너무 사랑만 받아서 더 아프게 느껴졌던 것도 같아요. 제가 교실에 엎드려 있는 모습마저 기사화하는 걸 보면서는 정말 화가 나기도 했죠.” 하지만 문근영은 이제, 마치 민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웃어 보인다. 눈을 감았더니 마음이 열리고 상처가 치유된 셈이다.

“시각장애인분들은 대개 많이 움츠리고 다니세요. 안 보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 못 믿고, 민이처럼 폐쇄적이 돼요. 하지만 왜, 눈이 안 보이면 다른 감각들은 더 열려 있잖아요. 진심 같은 건 오히려 더 잘 느껴져요. 이번에 연기를 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상처, 이미지. 문근영에겐 착하고, 성실하며, 귀여운 여동생의 이미지가 강하다. 조금의 일탈도 곧 커다란 부담이 된다. “차라리 지금은 고맙게 느껴져요. 이제는 저를 하나로만 봐주지 않잖아요. 연기자 문근영과 연예인 문근영을 가지고 제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물론 제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기는 하지만, 제가 만든 이미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공부하겠다고 말한다. 지망하는 전공도 다소 의외인 국문학과다. 연예인 문근영이기보다는 대학생 문근영이 되고 싶다고 한다. “말하기 무섭지만(웃음),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고전문학을 좋아해요. 정형화된 틀을 깨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임팩트가 큰 것 같아요. 이건 제 ‘숨은 꿈’인데요. 시조 속의 사랑 이야기를 나중에 시나리오로 써보고 싶기도 해요. ‘숨은 꿈’이에요. ‘숨은 꿈’, 강조해야지. (웃음)”

문근영의 목소리는 왠지 이미지의 알을 깨고 싶어하는 데미안 같았다.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성숙,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변화. 지나간 상처는 대중의 기호와 문근영 사이의 골을 메울 만큼 아물고 있었다. 배우는 경험으로 먹고산다. ‘어린 신부’의 사랑 노래는 끝났다 하더라도 아픔을 한 꺼풀 벗겨낸 자리엔 새살이 돋아난다.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해,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겠다”는 문근영에게 성급한 기다림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문근영에게 김주혁은

“제가 매우 좋아했던 배우예요.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으면 김주혁이라고 했으니까요. (웃음) 근데 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좀 어려운 게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좀 그랬죠. 근데 자꾸 보고 이야기하고, 같이 지내다보니까 정말 편한 오빠가 됐어요. 왜 인터넷 게시판에 저랑 주혁 오빠가 역할이랑 안 어울린다는 말이 있었잖아요. 저에 대한 건 잘 모르겠지만, 주혁 오빠는 정말 멋있는 줄리앙이었어요. 그건 확신할 수 있어요. 이번 영화 보면 안 어울린다고 했던 분들 후회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