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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유쾌한 그 남자의 리듬
박혜명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10-12

<바르게 살자>의 정재영

정재영과 대화를 트는 일은 별로 쉽지 않다. 그는 깐깐하고 딱딱한 주제를 건드리는 대화에 얼른 호기심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재영은 단순한 얘기를 좋아하고, 허허실실한 농담의 리듬을 한번 타기 시작하면 넘실넘실 그 리듬을 계속 이어간다. 바깥에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에 묻힐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느린 말투로, 꾸준히. <웰컴 투 동막골>(2005), <나의 결혼원정기>(2005), <마이 캡틴 김대출>(2006), <거룩한 계보>(2006) 그리고 장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 결국은 장진 패밀리의 일원인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 <바르게 살자>(10월18일 개봉예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최근 커리어를 보면 가장 먼저 읽히는 건 안정된 직업배우로서의 성실함이다. 김유진 감독의 사극 <신기전>을 찍으면서 “지금까지 했던 걸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액션”을 하느라 살이 많이 내린 그는, 얇은 이목구비가 도드라진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추리닝’ 차림으로 나타나 소파에 몸을 묻고 어느 순간 다리를 들어올려 긁기 시작했다. 배우의 철학이 담긴 답변을 예상하고 작성된 질문들은 그의 정신없는 우회적 대답들에 처참히 무너졌다. 대신, 정재영이 보기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이 많이 내렸는데. =아팠어요. 열나서 2주 입원해 있었어요. 그래서 술도 못 먹고. 병원에서 먹지 말라고 그래서.

-간이 안 좋아진 건가봐요. =예.

-그동안 술을 얼마나 드셨길래…. =많이 먹는 거보다는 매일 매일 먹으니까. 소주 한 병에서 두 병. 아무래도 많이 먹는 것보다는 매일 먹는 게 더 안 좋죠.

-주로 어떤 분들과 드셨나요. =촬영장에서는 감독님하고 스탭들하고 마시고, 촬영 없을 땐 바깥의 지인들하고 마시고. 최근에 <신기전> 찍으면서 계속 과음하고 그랬더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몸이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안 돼서, 사실 술을 마시지 않은 건 며칠 안 됐는데(웃음) 예전처럼 많이는 못 마시죠.

-아예 끊긴 힘든가봐요. =아무래도 직업상 끊기가 힘들죠. 조금씩 자제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만나자마자 술 얘기를….

-<바르게 살자>가 올해 1월 말에 촬영을 끝냈으니까 거의 1년 가까이 됐네요. =전 아직 영화를 못 봤어요. 이 영화는 시추에이션 코미디이고,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하고도 그 얘기를 제일 많이 했어요. 이런 코미디일수록 러닝타임이나 이런 데서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면, 다 찍었는데 3시간 나왔다 그러면 심각한 거거든요. 20분 이상 자르면 이건 재미없는 거다, 그래서 그 부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신인감독들이 보통 제일 하기 어려운 게 그런 거거든요. 러닝타임 맞추는 거.

-정도만이라는 역할 연기는 어땠는지. 원칙주의자인 우직한 경찰관이 범법자 역할극에 뛰어드는 건데. =그 지점에 대해서도 얘길 많이 했는데, 그냥 강도들의 어떤 전형적인 짓들, 관객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거, 닥쳐! 이런 걸 정도만이가 흉내를 내는 거죠. 이 영화는 액션보다는 리액션이 더 중요한 영화예요. 정도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걸 사람들이 쳐다보는 방식이 재밌는 거지, 리액션과 맞물리지 않으면 하나도 재미없는 영화예요. 외면적인 시추에이션에 그 인물들이 다 공감해야 하고 그걸 결국 관객도 똑같이 공감해야 하고. 인질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사실 ‘나 안 해!’ 그러고 나가버리면 끝인데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도록. 왜 쟤네들이 저 모의훈련에 계속 참여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이 영화는 끝이에요. 그러니까 더 진지하게 해야 하고 더 딴생각 못하게 밀어붙여야 하고.

-이 영화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지. =<거룩한 계보> 끝나고 쉬려고 했는데, 첨엔 관심이 없었어요. 뭘 준비한다기에, 열심히 해라(웃음), 잘해라, 그랬죠.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나와서 읽어보니 재밌었어요. 상황이 되게 독특하더라고요. 일단 신선했어요. 신선해서 감독을 만났죠. 이런저런 얘길 하고, 근데 장진 감독의 조감독으로서만 만나다가 감독으로 만나서 얘기하려니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웃음)

-두분 나이 차이가…. =7살 차이 나나? 제 학교 후배고. 그 친구가 원래 말수가 별로 없어요. 자기 의견을 잘 못 내비치는 그런 타입이죠. 근데 그날 만났을 땐 말 되게 많이 하더라고요. 작정을 하고 나온 거 같아. (웃음)

-<마이 캡틴 김대출> 할 때, 시나리오 읽고 울었다고 했는데, 남자가 우는 건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영화가 흥행이 썩 잘되진 않았는데 속상하진 않았는지. =속상했죠. 속상하고 음, 흥행 안 될 줄은 알고 있었어요. 다 찍고 나서. 그래서 이미 개봉하고 이럴 때는 속상함이 오히려 없었고, 찍을 때 많이 속상했죠. 어느 정도 찍으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구나 알게 되는데, <마이 캡틴 김대출>은 다른 독특함이나 영화적인 신선함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100% 드라마의 힘으로 움직여야 하는 작품이거든요. 그런 영화는 훨씬 더 디테일해야 해요. 리얼해야 하고. 편집이나 사운드나 음악이나 이런 걸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극 자체가 와닿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좀 잘 안 돼서 되게 속상했죠. 요즘에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집에 굴러다니고 있기에 보고 있는데, 디테일 싸움인 것 같아요. 누가 더 치밀하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느냐, 프로 세계에서는. 그냥 적당히, 이 정도 했으니까 뭐,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았나? 하는 순간에 실패하는 거 같아요.

-성격이 집요한 편인가요. =원래는 집요한 스타일이 아닌데, 혼자 있으면 허~ 이러면서 귀차니즘, 귀차니즘의 대명사거든요? 근데 이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같아. 영화가, 연기가 제 취미라면 뭐…. 제가 유일하게 디테일하고 집요할 수 있는 게 일인 거 같고, 나머지에는 그런 게 없어요.

-아이들이 있죠. =둘. 여덟살하고 네살. 아들, 아들.

-아이들하곤 주로 뭘 해요. =애들하고는 주로, 농담 따먹기…. 축구하자 그러면 10분 하고 아아, 아빠 졌다 야 아빠 졌어, 근데 얘네들은 지칠 줄을 몰라. 지쳐야 되잖아 좀. 그렇게 막 놀면 사람이 심드렁해져야 하는데, 얘네들은, 더해주면 더해줄수록 오히려, 더 오래하려고 그래. 레슬링 같은 것도 적당히 해서 아빠 졌다, 이제 더이상 할 수가 없다 그래야지, 계속하면 정말 하루 종일 하고 그래야 돼. (한숨) 단순한 거 같아, 애들이.

-애호하는 영화 장르가 있는지. =특별히 좋아하고… 그런 건 없어요. 그냥 극장에 나오면, 일반 관객하고 똑같아요 저는.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너무 솔직한 것도 안 좋아. 우리 와이프가 그러더라. 어저껜가, 무슨 라디오를 들었나 그랬는데, ‘스타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면서 별이란 거는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안된다 이거야. 멀리서 빛나야 별이지. 달은 별이 아니잖아.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질 않잖아. 그러니까 친근감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웃음) 친근해지면 이미 스타가 아니라는 거야. 일단 기본적으로는 멀리 있고 근데 어, 이 사람이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가끔 들어야지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까이 있고 가끔씩 멀리 있다 그러면 거꾸로라 이거야. 좋아하는 장르가 있으세요? 그러면 아 예 뭐, 저는…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일반 관객하고 똑같아요, SF 좋아하고요 재난영화 좋아하고요, 블록버스터 좋아하고요, 이러면 진짜…, 좀 멀리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거를 진짜 이제 고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삶이…. (일동 폭소) 영화는 그렇게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근데 로맨틱코미디는, 별로 안 좋아해요. 습관이 그런가. 여튼, 자극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싱거워요. 웃기지도 않고. <첨밀밀> 같은 건 너무 좋아하는데, 영국 배우 나오는 거 그거 뭐야,

-휴 그랜트. =응, 휴 그랜트 나오는 건 너무, 리얼리티가 없어서 안 좋아해요.

-그럼 그런 영화는 시나리오 들어와도 안 할…? =그런 영화를… (추리닝을 걷더니 종아리를 긁으면서) 하는 거 하고 보는 거 하고는 또 다르죠. 그런 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하기는 하죠. 관객, 많이 들잖아요. 나는 안 본다 이거지. (웃음) 하는 거 하고 보는 거 하고는 진짜, 천지 차이죠.

-예전 인터뷰에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고 모험을 하고 싶지만 가정을 꾸려가는 데 그게 장애물이 된다면 연기를 그만둘 수도 있단 얘길 한 적이 있는데. =스펙트럼을 넓히는 건, 뭐 모든 배우의 꿈이죠. 근데 현실은 그것과 반대로 간다니까요. 나 자신은 연기나 이런 것들에 대해 더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한테 주어지는 역할은 오히려 넓어지지가 않고 좁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죠. 원래 사람 자체는 그렇게 나이가 들면 더 풍족해지고, 인생도 넓어지는 게 당연한 건데. 근데 내가 한 게 결과적으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거 같기도 해요. 배우들이 “저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이게 마르지 않는 샘이고요, 많아요, 30개, 40개의 캐릭터가 있고요”, 이런 걸 장담하기 힘들다는 거죠. 이건 통계도 없고, 판단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잘했다고 생각해도 사람들이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 혼자 헛상상을 한 거잖아요. 근데 이제 조금씩 궁금해지는 거 같아요. 나라는 배우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옛날엔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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