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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봉] “이제 되새김질을 할 때 같아요.”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8-04-16

<경축! 우리사랑>의 배우, 기주봉

기주봉은 딴 세상 사람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바람 피우다 아내 봉순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축! 우리사랑>의 남편보다는 쓱 다가와 성남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밤과 낮>의 민박집 주인을 더 닮았다. 인터뷰가 수월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질문에 곧장 답변을 내놓는 걸 주저했고, 말을 입 안에서 자주 굴렸으며, 상당한 양의 말을 꿀꺽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대신 그는 파리에서 만난 기인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동안 마임을 선보였다. 손님을 받지 않는 카페의 오후. 종업원들은 모두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는데(이 카페의 주인은 <두근두근 체인지>의 신정구 작가다), 직접 만든 간이 무대에서 기주봉은 근육을 자유롭게 놀렸다. 미동없던 그의 얼굴 주름선이 살아났고, 그의 언어 박동 또한 기적적으로 빨라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 그 자체는 불충분한 보조수단 이상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그는 분명 인터뷰를 또 하나의 공연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대화의 끝 대목. 남은 꿈을 물었더니 그는 “기회가 되면 지구를 우주에 소개하고 싶다”는 그럴듯한 에필로그까지 남긴다. 독자에게는 그의 독특한 화법이 생소할 수 있어 지구식 어법으로 읽기 편하게 옮겼음을 밝혀둔다(그의 전사가 궁금한 이들은 를 참조하시길).

-올해 개봉한 두편의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형사가 아니네요. 민박집 주인과 아버지인데. =매니저가 형사 그만해야 한다고 하긴 해요. 내 입장에서는 굳이 그걸 따랐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가는 것 아닌가 싶은데. 여기저기서 어른 노릇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도 있고. 드라마 <누구세요?>에서도 그러고 보니 아버지네. 좀 튀는 아버지이지만. 형사냐, 아버지냐 이런 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도 얼마나 많아요, 형사라고 해도 다 똑같은 형사는 아니니까.

-<경축! 우리사랑>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하던데요.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그 작품을 한번 봤어요. 괜찮다 싶었는데 못하게 됐고. 아이비픽쳐스의 이형승 대표가 계속 추진을 해왔나보던데. (시나리오) 잘 보셨다면서요, 라며 다시 주더라고. 삼박자가 맞은 거죠. 내 스케줄도 맞았고, 하고 싶던 것이고. (곁에 있던 매니저 왈, ‘선생님, 사실 드라마는 하나 깠습니다’) 아, 그 정도야 뭘. 안 아까워요. <경축…>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해요.

-시나리오에서 어떤 점이 가장 눈에 띄었나요. =평범한 가정을 다루지만 리얼리티의 각도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파격적인 설정도 신선했고.

-일반적인 가장이 보기에 가장 파격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딸 정윤이에게 넋을 놓고 ‘우리가 엄마를 이해해야 해’라고 말하잖아요. (웃음) 봉순은 매력적인 여자인 것 같아요. 음, 이거 큰일날 소리인가. 그래도 세상에 무너져야 할 건 아직 너무 많아요.

-관객에게 영화가 어떤 파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나요. =좀더 자유로워지는 거죠. 세상을 향해서 자기를 열어가는. 바깥 혜성에서 보면 지구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사회가 만든 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제 출구나 통로를 만들어야 해요. 현실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는 거죠. 어른으로서 이런 말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자신이 조금 다치더라도, 상처를 받더라도 자유의 가능성을 찾아봐야 한다고 봐요.

-개봉까지는 1년 넘게 걸렸는데요. 첫 촬영 때가 생각나나요. =음… 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조금 있다가 할게요.

-오점균 감독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차분했어요. 동세대라는 느낌도 편안했고. 누구 닮았다는 소리는 잘 안 하는데 송창식 같았어요.

-오점균 감독은 대학원 다닐 때 <은하철도 999>의 철이로 불렸다던데요.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철이도 좀 닮았네요. 허허.

-두분 다 과묵하신 편이잖아요. 첫 만남에서 30분 동안 침묵하다가 술 드시러 가셨다고…. =내가 그랬나. 내가 말이 많은 건 아니니까요. 침묵도 언어라고 생각해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어떤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뜻은 감독과 처음부터 통했던 것 같아요.

-의미있는 침묵을 오해한 사람들은 없었나요. =연기할 때도 그래요. 리얼하게 가다가 멈춰 서요. 물론 캐릭터를 봐가면서 하는 것이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대사를 까먹고 저러고 있구나 해요. 난 엇박자인데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안 보는 거죠. 물론 어떤 관객은 그게 연극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내 매력이라고도 해요. 술술 매끄러운 편은 아니에요. 연극하면서 형성된 건데 언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말을 아무리 잘해도 안 와닿는 경우가 있고, 말을 못해도 확확 와닿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주 서요. 그 순간에 속대사를 하는 거죠. 침묵도 속대사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침묵 말고.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 제작진도 오해한 건가요? 전에 프로듀서가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기주봉 선생님이 대사를 외우지 못해 NG를 가장 많이 냈다고 하던데요. =아, 그때는 정말 대사를 못 외웠어요. 정신이 몸을 이겨내지 못한 거예요. 전에 수술을 한 적 있어요. 심근경색에 동맥경화까지 와서 가슴을 한번 열었는데, 그게 한 1년 넘어서까지 후유증이 있더라고. <달콤한 스파이>도 아마 그 무렵일 거예요. 회복하지도 않고 곧바로 드라마를 해서 그랬을 텐데. <불멸의 이순신> 할 때도 힘들었어요. 긴 대사를 하나 받았는데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때는 왜 안 되는지 몰랐지. 그냥 걱정하다가 주위 선배, 동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어요. 몇번을 해도 이 대사가 잘 안 된다 하고. 그래서 카메라 옆에 내 대사를 써서 한 적도 있고.

-수술실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기도했죠. 동의서에 사인하면서부터 그랬어요. 세상이 나한테 맡길 일이 없으면 죽여버리고, 그게 아니라면 살려달라고. 그 마음으로 살아나와서 거울을 봤죠. 온몸이 퉁퉁 부었더라고.

-건강해지셨으니 다행이네요. <경축…>에서도 강렬한 베드신을…. (웃음) =하하하하. 베드신은 처음이나 다름없어요. 그런 연기를 세련되게 할 만큼은 아니거든요. 어색하고. 방은희 그 친구가 편하게 해줬으니까 내가 감정을 쓸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거부반응이 있었다면 위축됐을 텐데. 보면 내가 리드할 성격은 아니잖아요.

-전에는 한번도 없었나요. =포르노 찍자는 제의를 받은 적은 있어요. 80년대 후반쯤 될 거예요. 연극배우로 이름을 좀 얻었을 때인데, 외국에 팔겠다면서 1억원 정도 준다고 하는 거예요. 갈등했죠. 그래서 혼자 호텔에 가서 옷도 벗고 누워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체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해서. 근데 나중에 제작진이 시장조사를 해봤더니 뭐 잘 안 될 것 같다나. (웃음)

-젊은 관객은 <경축…>에서 당당히 바람 피우던 남편이 갑자기 봉순에게 가정을 지키자고 애원하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요. =극중 재영이라는 인물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 별로 문제가 안 되죠. 봉순은 첫 번째, 미용실 사장은 두 번째 이러면 되니까. 그런데 재영의 상황은 그게 아니잖아요. 욕망이 있어도 윤리, 도덕, 사회적인 시선을 무시할 수가 없는 처지예요. 그러니까 봉순이 젊은 남자를 만나는 상황에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거죠. 우유부단한 거예요.

-후반부에 도둑처럼 미용실을 찾아들어가잖아요.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인데. =남자의 처지가 불쌍하죠. 그 장면을 찍으면서 전 이런 느낌도 담고 싶었어요. 남자라면 큰 뜻을 펴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인생은 완전 반대고. 서민들의 경우엔 그런 자괴감이 더 클 것이고.

-남편은 그래도 좀 경쾌한 느낌이 들던데요. 영화 전체가 코믹한 분위기라서는 아닌 듯하고. =비극을 많이 했잖아요. 제가. 그런데 민병훈 감독이 <포도나무를 베어라> 찍으면서 좀더 가볍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연기하면서 농담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경축…>에서는 방은희씨 발 붙잡고 너 없이 못 산다고 하는 장면이 제일 웃기죠.

-<경축…>은 촬영기간 동안 쭉 전주에 머물면서 찍었잖아요.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숙소 정해두고 현장에 계속 있어서 좋았죠. 물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전에는 그렇게 못할 때도 많았지만.

-촬영 끝나면 뭐하셨나요. 취미가 별로 없을 듯한데요. =취미요? 이제 가져야죠. 사진 찍고 싶어요. 그런데 막상 들려주면 이것(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 못할 것 같아요. 딴 일 하면 죄짓는 것 같으니까. 낚시하고 골프하는 사람들 보면 부러우면서도 만약 내가 그러고 있으면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체질적으로 안 돼요.

-그런 성향은 극단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나요. =중학생 때부터 그랬어요. 연극반에 들면서부터는 아침에 학교 가서 연습하고 나면 밤 12시고. 방학 때는 빈집 찾아서 합숙하고. 커서는 극단에 들어가서 뒹구니까 다른 생각을 못했던 거죠.

-<밤과 낮>은 해외에서 찍었잖아요. 여행처럼 느껴지진 않던가요. =파리에 가니까 그저 한구석에서 내 향기를 품고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서 한 2년만 버티면 좋겠구나. 그래서 실제 거주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좀 막막해지더라고. 불어도 해야 하고. 거기서부터 막히는 거지.

-파리가 좋은 건가요, 아니면 한국이 싫어서일까요. =획일화된 도시가 싫은 거겠죠. 촬영 끝내고 산책을 가곤 했어요. 이 동네를 하루 둘러보면 아 이렇구나, 그런데 그 다음날 똑같은 곳에 가도 생각이 달라져요. 한 2년 정도 파리에 있으면 이 공간이 갖고 있는 느낌들을 다 감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거기서는 한국하고 달리 빤히 쳐다볼 수 있으니까 좋죠. 배우야 액션에 관심이 있으니까. 거기서 본 세 가지 유형의 흥미로운 인물이 있는데. 이건 몸으로 표현을 해야 제 맛이지. (이 뒤에서부터는 배우 기주봉의 마임이 이뤄졌다. 받아 옮기는 건 불가능하니 상상만 하시라. 가장 인상 깊었던 유형만 여기에 불완전하게 옮긴다) 두 번째 인물은 거리에서 봤어요. 시계추처럼 고개를 계속 왔다갔다 하는데, 그걸 보고서는 나도 같이 놀아줬지. 똑같이 머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너 미친 거 아냐, 라고 눈으로 묻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가 갖고 있는 시가를 하나 줬더니 딱 멈춰. 아, 그렇구나 했는데 한번 후 하고 내뱉더니만 또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는 거야. 정신이 돌아왔구나 싶었는데 또 까딱까딱인 거지. 한 시간 반 정도 그러고 나니 너무 지쳐서. 그냥 잘 놀았다, 하고 숙소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정말 그 사람이 미쳤는지 궁금한 거지. 그 다음은 뭘까. 그래서 나무 뒤에 숨어서 30분을 지켜봤는데 계속 그러고 있어요. 정말 미쳤구나. 2시간 정도 지났나. 드디어 자리를 뜨더라고. 그냥 올 수 있나. 따라가봤는데, 한참을 가더니 다른 골목에서 또 그러고 있는 거야. 아, 저거 또 두 시간 가겠구나,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밤과 낮> 찍으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홍상수 감독이 일정에 관한 배려를 해줘서 로마도 다녀오고, 영국도 가보고. 그러면서 거기서 한 2년 눌러살자는 욕구는 더 심해졌고. 근데 돈이 있어야지. (웃음)

-현지인과 연애를 하면 되잖아요. 눌어붙을 수도 있고. =그럼 안 되지. 집사람이 나를 보내주겠어? 그래. 연애. 그것도 해보고 싶긴 한데.

-<밤과 낮>의 성남처럼 풀리면 안 되고. =물론 그렇지. 그럼 안 되고.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좀 되새김질도 하면서 살아야겠구나 싶어요. 50이 넘으니까. 되새김질만 해도 생이 모자랄 것 같고. 근데 또 기질적으로는 여전히 앞으로 달리자는 주의고. 허허.

-(마임하는 걸 보고서 뒤늦게 깨달았다) 콧수염이 근사한데요. =예전에 잠깐 연극할 때는 많이 길렀는데. 이거 기르니까 예전 생각이 나요. 한강에서 모자 푹 눌러쓰고 앉아서는 이제 어떻게 사나 갑갑해하고 그랬으니까. 90년대 초일 거예요. 근데 이번에는 길렀더니 흰수염이 나더라니까.

-창작에 대한 욕구는 없나요.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보면. =아, 그럼요. 있죠. 세계의 리얼리티를 묘사해보고 싶은 게 있죠. 근데 창작이라는 건 본질적인 메시지를 건드려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을 자꾸 건드려줘야 하는데. 스스로도 이제는 메모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봐요. 예전에 잠깐 하다 말았더니 다 반짝반짝 하는 것들을 놓쳐버렸다고. 물론 그전에 내 여건을 만들어야겠죠. 후배들과 같이 나눌 만한 여력도 갖춰야 하고. 가끔 후배들이 그래요. 선배님만 먹고살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소리 들으면 마음 아프죠. 좋은 말만 들려주는 선배,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어요. 후배들이 훈련할 공간도 만들어주고 싶고, 극장도 하나 만들어주고 싶고. 그런데 겨우 나 혼자 먹고살 정도니까. 선생님, 선배님 소리 들을 때마다 쑤셔요.

-과거 인터뷰를 보면 영화 찍는 즐거움은 없던데요. 경제적인 이유에 대한 언급만 있지. =왜 없어요. 이렇게 설명해볼게요. 방송하는 사람들이 영화 찍는 거 보면 시간을 왜 저렇게 잡아먹는다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그 잡아먹는 시간이라는 게 창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NG도 창조이고 그게 영화라는 매체가 가져야 할 자부심이라고 봐요. 공장에서 숙련된 테크닉으로 빨리 뽑아내는 것 말고. 그게 가능하더라도 계속 다른 걸 모색하는 게 창조이고, 영화는 거기에 가깝죠. 배우로서 느끼는 긴장도 그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

-형(연극연출가 기국서)은 어떤 존재인가요. 동료인가요 아니면 선생님인가요. =내가 붕 뜨는 것을 가라앉힌 사람이에요. 그냥 쭉 붕 떴으면 아마 개그맨 했을 텐데. 남 앞에서 막 떠들다가 집에 돌아갈 때 허할 수 있잖아요. 제 안의 심지가 없으면. 연극하면서 또 형의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저도 조금씩 변한 거죠. 좀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서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뮤얼 베케트는 처음 봤을 때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분석이 안 됐으니까.

-형과 싸운 적은 없나요. =많죠. 연출자는 가둬두려고 하고, 배우는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존재니까. 나는 평생 남의 대사 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도망가려고 하면 연출자는 자기 리듬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무대에는 언제 설 건가요. =아까 되새김질 이야기 했잖아요. 내 레퍼토리를 다시 올려보고 싶어요.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작품. 사실 <리어왕>도 76극단 30주년 공연에 서려고 했었는데, 공연 앞두고 포기했어요. 이전 공연 때는 반년을 무대 하나만 바라보고 열정을 쏟았는데, 그때만큼 에너지를 진하게 쏟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그만뒀어요. 충전을 좀 하면서 다시 해보고 싶죠. 아직도 배우로서의 저 자신한테 화가 많이 나요. 테크닉이 아닌 그냥 몸에서 빛이 확 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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