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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지난 주말에는 <홀리데이> 신간을 보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홀리데이> 매거진은 지역과 여행을 다룬 잡지로 세계에서 유명한 잡지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이 잡지도 사연이 있다. 1946년에 창간한 <홀리데이> 매거진과 현재의 <홀리데이> 매거진은 큰 차이가 있다. 1946년과 1977년 사이 뉴욕에서 만들어지던 <홀리데이>는 작가와 사진가에게 원고 길이도, 여행 경비도 제약 없이 전세계 곳곳의 지역과 여행의 본질을 탐구하기를 원했다. 헤밍웨이, 잭 케루악 같은 작가들은 <홀리데이>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판형도, 분량도 적어지던 <홀리데이>는 갑자기 폐간을 알린다. 모든 것은 끝난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홀리데이>는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의 <홀리데이>와 지금의 <홀리데이>는 큰 차이가 있다. 37년 만에 파리로 자리를 옮긴 <홀리데이>는 호마다 한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다루고, 그 나라의 문학과 예술보다 패션과 스타일을 주로 다룬다. 이것을 같은 잡지라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같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잡지의 미덕인 동시에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잡지를 읽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광주의 작은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기 위해 다름씨와 함께 택시를 탔다. 원래 광주 사람이야? 택시 기사는 심드렁하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No, I m from New york.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아뇨… 광주 사람 아닌데요. 기사는 외지 사람이 그 동네에 가자고 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거기를 왜 가는 거야? 거긴 정말 아무것도 없어. 알아요. 그런 데를 왜 가? 아무것도 없어서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사는 도착했다고 말했다. 택시비는 1만3천원이 나왔다.

우리는 내려서 바다를 계속 걸었다. 그는 걸을 때마다 뭐라도 쓰라고 독촉한다. 수많은 작가가 당신 사고(史庫)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당신이 쓰고 싶은 문장과 서사를 끝끝내 그들이 모두 써버리고 말 것이라 경고했다. 하나의 행위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나 산책, 서점 따위에서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나요. 우물쭈물하다가 당신은 결국 표절 작가가 되어버릴 겁니다. 저는 요즘 일하기도 바쁜데요. 매일 쏟아지는 메일에 하나하나 회신하다 보면 더이상 쓸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고, 인터뷰, 홍보, 출간…. 이런 제안 메일을 읽다 보면 어떤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기에 답을 해주는 행위도 일종의 픽션이 아닐까요. ‘선생님이 보내주신 제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해보았으나’, 혹은 ‘만드시는 잡지를 매우 흥미롭게 읽어보았으나’. 결국 어떤 질문에 대한 활자적인 응답이란 점에서, 그리고 읽는 독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동시에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제가 하는 답신은 일종의 소설 쓰기 연습입니다.

우리는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계속 계속 걸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1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힐을 신고 왔는데 한번 같이 걷기 시작하면 두 시간은 족히 걸어대는 무례한 데이트 매너를 견딜 수 없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크록스만 신고 온다. 크록스 샌들은 영혼이 충만한 사람을 위한 풋웨어다. 독립적이고 강인한 발을 가진 사람이 신는 풋웨어.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온전히 확립된 까닭에 애써 굽이 높거나 화려한 스타일로 치장할 필요가 없는 이를 위한 마스터피스. 힐을 신던 그와 크록스를 신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풋웨어 하나로도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시대는 변하고, 우리는 시대 속에서 변한다. 그의 발도 그렇다. 만날 때마다 크록스를 신고 두 시간씩 걸어대는 통에 더이상 그는 힐을 신지 못하는 발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했다. 근데 이런 변화는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강요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달라진 모습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고 싫어진 것도 아니에요. 어쩌라는 건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말하면 한대 맞을 것 같아 무언가 할 말을 찾으려 그의 발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는 아니다.) 그렇군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된 거군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사고(事故)에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태풍이 삼켜버린 해만의 바다를 계속 계속 계속 걸었다. 크록스 샌들을 신은 채로.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무얼 부르는 거지? 어쩌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이걸 뭐라 불러야 하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걸었다. 언어를 잃어버린 고요한 짐승같이.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한 지하 노래방 계단 너머로 누군가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촌스러운 간판의 술집 사장은 울고 있었다. 전시는 이미 끝나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이 똑같아.

누군가 흔들어 깨워 일어나니 서점에 온 손님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서점을 했던 사람처럼 잡지 몇권을 골라주고 자리에 앉아 다시 <홀리데이>를 읽으며 이게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주 좋은 시작도 아니다. 이러한 꿈을 꾼 것은 자기 전에 <홀리데이>를 읽으며 어디든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인들이 광주비엔날레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사연이 있다. 애틀랜타에 있었던 나도, 뉴욕에 있었던 나도, 서울에 있었던 나도, 제주에 있었던 나도 과거의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도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고 지금은 맞았지만 그때는 달라진 것은 아마 저기에서 떠나온 나는 여기에 도착했고 또 여기서 떠날 나는 어딘가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같다. 여행을 가는 것과 영화관에 가는 일, 잡지를 읽고 그걸 다시 떠올리는 일. 우리는 다 거기서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각각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같은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