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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연기가 하고 싶어서
이주현 2023-08-18

까맣게 잊고 있던 부끄러운 경험 하나가 떠오른다. 대학 1학년, 몸담고 있던 교내 방송국에서 영상팀 친구들이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거의 모든 동기들이 크고 작은 배역에 동원된 가운데 나 역시 카메라 앞에서 연기라는 걸 처음 해봤다. ‘계단을 올라간다. 문 앞에 다다른다. 뒤돌아본다.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카메라가 내 얼굴을 줌인한다.’ 장르는 호러 아니면 스릴러였지만 누가 봐도 실소를 터뜨릴 연기였다. 이후 친구들이 다시는 나를 배우로 기용하지 않은 걸 보면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게 연기는 이해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미지의 영역 중 하나다. 배우들의 존재가 늘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도 그래서일까.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최익환 교수에게서 여름방학 기간 숭실대와 서울예대 학생들의 ‘대학 연기 배틀’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현장에 초대해달라 청했다. 8월11일, 두근두근 두근대는 가슴 안고 숭실대로 향했다. 오후에 진행된 2라운드 연기 대결. 숭실대 학생 1명, 서울예대 학생 1명이 무작위로 호명되면 이들은 짝을 이뤄 지정 대본 혹은 즉흥 연기를 3분간 소화해야 한다.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출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즉흥 연기의 상황은 이런 식이다. “지금 두 사람은 유명 고깃집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면접 대기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헤어진 연인 사이입니다. A학생은 ‘너 라식했다?’라는 말로 시작을 해주고, B학생은 ‘그때 네가 나 밀었잖아’라는 대사를 중간에 해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키스 직전의 상황까지 가주세요.” 잔인한 교수님들! 처음 만난 상대 배우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전개해나간단 말인가! 그런데 이 어려운 걸 학생들은 척척 해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을 울리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무대에 오른 모든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1420호엔 배우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렸다. 특집은 ‘배우열전’이다. 여름 한국 블록버스터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활약한 김종수, 김원해, 조한철, 김재화, 김도윤을 ‘배우열전’ 특집으로 만났다. 모두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고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애써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면 언젠가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난다.”(김재화) “(<악귀>의 서문춘 형사를 연기할 땐) 내가 겪은 무명의 연극배우 시절을 떠올렸다.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지만 어쨌든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게 무명배우들의 삶이다. 남들은 다 왜 가냐고 하지만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 혼자 믿으며 컴컴한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사람. 문춘이 그런 캐릭터 같았다.”(김원해) 연기만큼이나 묵직한 인터뷰를 읽다보면, 이들이 어째서 작품에 꼭 맞는 색감과 질감을 더하는 배우가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배우 지망생들에게 영감이 될 인터뷰가 이번호에 가득 실렸다. 나도… 연기를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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