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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예술과 문학 섹션: 예술의 넝마주이

말해놓고 나면 시시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잡지를 만들고 싶다’, ‘영화를 찍고 싶다’, ‘서점을 하고 싶다’ 같은 말들. 이것들은 사고 속에 있을 때 완벽하다. 분명 머릿속에서는 손쉽게 시대를 가로지르는 고전을 쓰고, 쓰타야에 버금가는 서점을 만들고, <뉴요커> 뺨치는 잡지를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들고 난 순간 모든 것은 보잘것없어진다. 그 오염과 타락은 발화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꿈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장르는 뭐야? 어떤 컨셉의 서점이야? 무슨 주제를 다루는 잡지야? 하고 물어올 것이다. 그때부터 자신이 상상한 세계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 깨닫게 된다. 고민하던 꿈과 논리는 옹색해지고 허술해진다. 간직하고 있는 꿈과 계획에 대해 대답하면 할수록 완벽해 보이던 미래는 실체화되고 단순화된다. 사람들은 흥미를 잃는다. 결국 네가 하겠다는 건 다른 데서 다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걸로 돈은 벌 수 있겠어? 왜 그런 쓸데없는 거에 신경을 써? 아무리 반박하고 설득하고 논쟁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활자화된 꿈과 이상은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세계일 뿐이다. 뭐든 사고 속에 있을 때 완벽하다. 사고(思考)가 실체를 띠는 순간 현실은 일종의 사고(事故)가 된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냥 꿈으로 간직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서점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도 비슷했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손님이 넘치고 수준 높은 사유의 교류가 이어지고 손님들은 서점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책을 한권씩 집어들고 갈 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서점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돈은 안 벌리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사람들은 잡지에 관심이 없다. 대부분 중요한 건 먹고사는 일뿐이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책이 팔리지 않으면 아야 한다. 먹고살아야 하므로. 상상과 달리 서점은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때가 많고 잡무는 끝없이 넘친다. 불현듯 들어온 벌레에 놀라는 일(손님을 벌레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진짜 벌레다), 새로 나온 잡지는 무엇이 있는지, 신간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주문하는 일, 팔리지 않는 잡지들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일, 적든 많든 팔린 내역을 잡지사에 알리고 송금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한주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분명 ‘종이잡지클럽’을 처음 시작할 때 현실에 붙잡히기보다 좀더 먼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을 텐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가상의 아름다움일지라도 실체화되는 순간 현실에 바짝 달라붙어버린다.

잡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초 AnOther 매거진의 문학쪽 담당 편집자 댄 크로에게 메일이 온 적이 있다. 그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문예지를 만들 거라는 포부가 담긴 메일을 보내왔다. 이 잡지는 1년마다 신간이 나올 거고, 10호를 끝으로 장렬하게 사라질 거라 했다. 잡지가 발행된다면 꼭 서울에 있는 종이잡지클럽에 입고하고 싶다는 정중한 부탁이 담긴 메일이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 사실 그가 하겠다는 프로젝트 역시 별 볼 일 없으리라 생각했고 스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5분 정도 했다.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그들이 만들려는 잡지의 윤곽을 보고 나서야 이들 역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초라하게 만들려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라고 회신을 보낼까 하다가 친절하게 당신의 잡지를 너무 기대하고 있고 서울에서도 최대한 잘 소개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에도 당신과 같은 부류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진 <Inque!> 1호는 인상적인 잡지였다. 잡지에는 세계적인 소설가 조너선 레덤과 마거릿 애트우트, 영화감독 막스 포터 같은 문학과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전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활자와 이미지를 선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처음 댄 크로가 말한 만큼의 포부나 야망이 담기기엔 부족했고, 가격은 포부만큼 비쌌다. 나는 인상 깊게 읽었지만, 그렇게 이 잡지는 그저 문예지의 창간호로 시작했다. 여전히 재고는 쌓여 있고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편집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호도 절판되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과 야망과 별개로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 평가는 냉정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무너뜨릴 정도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내용을 다루는 영화를 한편 소개하고 싶다. 연휴에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보면 뭐 이런 영화를 골랐냐고 한대 맞을 수 있으니 부디 혼자 보기를 추천한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마더!>다.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를 지구, 환경, 자연,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의 완벽을 실체화하는 사람들, 모든 예술과 문학에 몸담은 창작인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일 때 생기는 모든 오염과 타락,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에 그리는 구상을 담아내지 못하는 육체를 매번 탓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의 사고를 끊임없이 실체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작품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팔매질을 당할 때도 있고. 혹은 아무 관심도, 애정도, 사랑도 없이 버려질 때도 있지만… 아니 그런 경우가 열에 아홉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불온한 세상에 내보이고 타락시키고 부패시킨다.

이 원고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 어떤 원고를 쓸 때마다 완벽하고 논리적이며 기술적으로 짜여진 글을 상상한다. 하지만 원고 앞에 설 때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아 절망하고, 타자 앞에 설 때마다 해야 할 다른 업무들이 몰입을 침해한다. 그리고 탄생한 원고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제 와 떠올려 보면 내가 만들고 있는 게 수없이 초라하고 부족할지라도 그것이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에만 우리의 사고는 존재할 뿐이다. 매일같이 잡무에 시달리지만 나는 서점을 통해 구원받는 중이다. 생각만큼 팔리지 않아 걱정되겠지만 <Inque!>는 올해 무사히 2호를 냈다. 그 무엇을 한다고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니다. 망하는 쪽으로 서서히 갈 뿐이다. 서서히 망하며 우리가 지키고 싶은 초라한 것들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일은 스스로에게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타인의 평가와 반응과 상관없이. 완벽한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실체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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