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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주유소 습격사건
김수민 2023-10-12

지난 9월21일 대한민국 국회는 최초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국회 단독 과반 정당의 현직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총리 해임건의는 현 정부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를 사법적 또는 헌법적 차원에 이르기 전의 한도에서 최대치로 선고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그의 막돼먹음과 옹졸함만 부각되고, 이 역시도 총체적 국정 실패의 근거가 된다. 체포동의의 결과는 ‘구속’이 아니라 ‘구속영장 실질심사’다. 제1야당 대표의 주변에서 거대 부패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니 그의 책임을 놓고 중간 판단이 필요했다. 거대양당의 당론이나 다수 의견은 하나만 찬성하고 다른 하나는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다들 가결돼 이 사안들에서 나같은 시민들은 그들보다 더 크게 이겼다. 둘 다 찬성한 시민들이 거대양당을 역이용해 전승을 거뒀다. 이런 날이 언제 있었더라.

2010년 기초의원으로서 구미시 박정희 기념사업을 반대했을 때, 사퇴를 요구하는 친박단체, 면전에서 비난하는 지역 유지, ‘생매장‘, ‘능지처참’ 등등의 악플들 앞에서, 그 이상의 파고는 다신 없을 줄 알았다. 이 예감은 2019년 조국 사태에서 박살났다. 입시문서 위조범 비호가 ‘검찰개혁’이라던 이들은 나를 수구보수정당 편으로 몰았다(내가 국민의힘을 지지할 확률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합당할 확률보다 낮다). 그들은 재판을 30심까지 해도 반성하지 않을 태세다. 2021년 고발사주 폭로 사태에서는 윤석열 팬덤의 사실 부정, 증언자 공격, 근거 없는 음모론이 전면화됐다. 최초 보도 기자와 친분이 있어 사건의 내용과 본질을 잘 알던 나로서는 더더욱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거대양당 극성 지지자의 비난을 한날한시에 받는 논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거대양당 성향 패널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편 및 보도 채널에서 하차와 출연 취소를 연달아 겪었다. 이건 ‘부당해고’도 ‘블랙리스트’도 아니다. 제작진도 다원적 편성을 어렵게 만드는 시공간적 제약이나 거대양당의 미디어 중독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타령도 퇴장한 선수에게는 사치다. 나는 그냥 완패한 것이다. 마침 9월 21일 그날은 아무 일정이 없어서 집에서 뉴스를 지켜봤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종반부는 4인방에게 자극받아 몰려나온 조폭과 양아치들, 그리고 이 구도에 올라탄 4인방을 그리고 있다. 4인방이 양 패거리에 ‘저쪽 편’이라고 몰리는 장면은 내 경험과 닮았지만 나머지는 아니다. 일단 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거대양당은 서로에게 유효 타는 못 날리고 <황산벌>의 ‘거시기 등’처럼 욕이나 지르지만, 소수파를 괴롭히는 능력은 <적벽대전>의 주유급이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못했는지는 분명하다. 맞고 밟혔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은 소수파들을 모으지 못했다. 4인방 없이 습격은 이뤄질 수 없다. 거대양당 체제의 부속 노릇을 하던 기회주의자들까지 요즘 ‘제3지대’를 사칭하는 판국에, 나는 ‘이 최악의 국면은 곧 끝날 것’이라는 얕은 기대를 버린다. 먹은 욕만큼 시청률이 높은 막장 드라마는 새 드라마로서만 종영될 수 있다. 4인방을 캐스팅하는 일에 20년쯤은 더 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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