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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2002-08-24

김민기씨가 프로듀스한 <겨레의 노래>가 ‘히트’했더라면, 거기 실린 ‘사향가’도 제법 알려졌을 거다. 나같은 열성분자가 20장씩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강매했어도 앨범판매는 부진했다. 아니지. 그래도 거기 실렸던 <이등병의 편지>는 연주자를 바꿔가며 진짜 유행곡이 됐으니까 그 반대의 일이 생겨났을지도 모르지. ‘겨레의 노래사업단’에서 발굴한 그 노래, 만주의 무장독립군들이 애창했다던 옛노래는 참으로 구슬펐다. “내 고향을 멀리 떠나 타향에 와서…”로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 4반세기 전쯤, 잊혀졌던 독립군가들을 발굴·소개하는 시도가 있었다. 전투적이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노래들은 ‘사향가’처럼 애조 그 자체였다. 해설을 해주시던 선생께서 분석을 하셨다. 사람의 정조와 어긋난다면 그 노래가 어찌 힘이 될 수 있겠는가. 나라 뺏기고, 고향 떠나와, 가족과도 헤어졌는데 씩씩하고 경쾌한 행진곡풍 군가가 무슨 위로가 되겠나. 내 기억에 정확한 원문 대신 편집저장된 내용은 그렇다.

내가 <오아시스>를 본 날은 조선희씨의 첫 장편소설(그는 이미 80년대 말 <퇴적층>이라는 밀도높은 중편으로 소설가 데뷔를 했었다)의 출판기념회날이었다. 처음 받은 소설책은 아직 읽지 못했으니까,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화제 삼았다. 관객이 들까? 대화 한판이 돌고나면, 후렴처럼 질문이 붙었다. 이번호 28쪽 국내리포트의 제목을 예상한 선지자는 거기 없었다. 충심으로 이 영화를 지지하는 평론가조차도 아직도 리얼리즘을 배신하지 않는 이창동 감독과 우리의 대중정서, 최근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냉담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노래는 지금 정서에 맞지 않아, 라고.

이건 일단 해피엔드다. 우리 속엔 우리의 비열함과 이기주의를 분해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그들의 좌석을 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고, 영화는 그 생각과 공명했다. 어떻게 공명은 이루어졌는가. 김봉석, 김소희, 심영섭, 유운성 네 평론가의 <오아시스> 지지선언에서 그 경위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종두와 공주에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테니 너희들의 희망을 세상에 맡기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의 해피엔드는 완결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