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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년
2003-05-03

이제 8년이군요.

1년전, 창간 7주년이라고 약간 들뜬 말투로 이 지면을 채우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리고 1년 동안 우리에게도 세상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에는 주체하기 힘들만큼 마음이 부풀었고, 또 어떤 일에는 꼭 세상이 끝날 것처럼 낙담하기도 했습니다.

현자라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해, 소심한 마음을 달래가며 전전긍긍 살아왔습니다.

고백 한가지만 하지요.

우리 온라인 사이트에 오른 글 하나 속에 ‘착한 씨네에게’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그 글을 쓴 분은 얼마간 못마땅한 점을 말하신 것이었지만, 우린 그 표현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건, 착한 우리를 알아봐 준다, 라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당연히), 우리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는 걸 확인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자기 연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덩치가 커져서, 또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착할 수만은 없겠지요.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어떤 이에겐 상처가 되고,

우리가 조심하고 배려한다고 만든 지면이 어떤 이에겐 불공평한 우대가 되기도 했겠지요.

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우리 속의 나쁜 관성이, 어떤 이를 괴롭히기도 했겠지요.

창간 8주년을 핑계삼아,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늘 그래오셨듯이, 매운 소리와 따뜻한 격려 번갈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지면에서 그래도 세상은 좋아질 거라고 쓴 다음에,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어서 그렇게 말한 건가,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것 외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만큼 힘들어서 그랬는가, 라고 물어오신 독자가 있었습니다.

뜨끔한 질문이어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정말 잘 모르겠더군요.

다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유희와 취향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란 게 정말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세상이 좋아진다면, 그 힘은 올바른 정치노선이 아니라, 기꺼이 유희하며 취향을 보존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은 여전히 접을 수 없군요.

8년 동안 변함 없이 관심과 질책과 격려 보내주신 데 다시한번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낄낄거리는 소재가 되건, 생각할 거리가 되건, 아니면 있어서 그냥 좋은 벗이 되건,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는 잡지가 되도록 더욱 애쓰겠습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