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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 많은 영혼

강냉이를 오도독 오도독 깨물며 에디토리얼을 궁리하는 이 시간에, <씨네21> 사무실 곳곳에서는 작은 수런거림과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한주 동안의 고심과 노동을 털어낸 취재와 사진, 자료쪽 기자들이 장난도 치고 다음주 작업에 대해 의논하는가 하면, 마감 독려해가며 원고를 매만지고 꾸미느라 숨이 턱에 닿았던 편집과 교열 기자들도 발걸음을 늦춘 채 농담 대열에 가세한다. 디자인 마무리에 한창이거나 제작 인쇄를 준비하는 동료들은 긴장의 도가 아직 덜 낮아졌을 것이다.

일터에서 행복을 구하는 건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갖기 어려운 태도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찰나적인 여유를 누리는 동료들이 발산하는 느낌은 따뜻하다. 세상 곳곳의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풍경일 터이다.

나의 상상은 고등학교 시절의 선인장 이야기로 점프컷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혜강이라는 친구네는 난을 키워서 파는 일을 했다. 세심하게 관리된 난초들 사이로 동그랗고 커다란 선인장이 몇개 놓여 있었는데, 친구는 선인장을 손바닥으로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해주면 훨씬 더 잘 자란다고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한 표정과 자세로 흉내를 내다 말았다.

그뒤로도 이와 같은 교훈은 내 인생에서 몇번이나 반복되었다. 아마도 그때마다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현자나 고수들이 거듭 전해주는 메시지들이란 참 단순하게 들린다. 각자의 분야를 오래도록 파고 들어가서 마침내 얻어낸 비전(秘傳)이라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다”, 아니면 “네가 지금 보는 것은 네가 그렇게 보기를 원한 것이다” 같은 종류다.

만약 지금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장난기 많은 영혼들의 도란거림이라면, 나 자신도 순간적이나마 영혼의 총기를 회복했던 것일까.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