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경계를 사는 사람들
2003-09-04

충무로라고 불리는 한국의 주류 영화계 안에 30대의 역량있는 여성프로듀서들이 열한명이 넘는다는 소식, 그러니까 우리가 알 만한 유능한 여성프로듀서가 도합 20명쯤 된다는 사실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우리나라에서 연간 만들어지는 주류영화가 대략 60∼70여편 된다). 이와 관련해 함께 나눔직한 이야기들이 이번주 <씨네21> 특집 기사에 상당량 들어 있다. 나는 여기에 그분들이 살아내고 있는 길과 삶의 태도에 대한 존경의 인사를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행복하게도 지난 한주 동안 어떤 영화에 사로잡혀 지냈다. 다큐멘터리 <영매>다. 한창 신명이 오른 무당이 그리도 서럽게 우는 모습과 함께 영화 만들기가 중반을 넘어서고야 그 이유를 알았다는 내레이션으로 대뜸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서서히 호흡 조절한 끝에 급기야 관객도 울린다.

카메라 앞에 선 무당, 그들이 중재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 화면 속 관중,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까지 꿰뚫어 소통시키는 박기복 감독의 역량이 감탄스러웠다. 제작자는 조성우(유명한 영화음악가 바로 그 사람이다)씨이고, 배우 설경구씨가 건조한 듯하면서도 탁월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내레이터로서의 역량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영매>가 거둔 효과는 서글픈 정서적 공감이나 이례적인 팀플레이 이상의 지점까지 갔다. 그것은 현대 인식론의 어떤 핵심을 가격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머릿속에 짜여져 있는 매트릭스에서는 죽음 혹은 죽음 이후란 철저하게 추방되어 있다. 그러니 삶과 죽음 사이에 단절이 아니라 연속을 보는 무당의 눈, 그 연속을 우리 눈앞에 장대한 퍼포먼스로 드러내는 무당의 존재는 우리에게 낯설고 기괴스러운 무엇이었을 뿐이다.

지금 ‘현대적’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건조하고 삭막한, 근시안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영매>는 무당이 그 비명을 듣고 함께 울어주는 이들이었음을 알려준다. 낡고 늙고 진부한 어떤 것으로 간주돼온 무당이 기실은 서구/근대/이성 위주로 구축된 질서와 태도가 얼마나 무능한지 암시하면서 치유를 시도하는, 경계와 변방의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당’과 ‘현대’의 첨예한 대립 앞에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덧붙여 이런 비주류 영화들이 관객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여전히 몇몇 개인의 노력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 <씨네21> 같은 저널을 비롯해서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실천적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고 있다. <영매>를 홀로 달랑 상영하는 서울의 하이퍼텍 나다는 객석 오른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자유분방하게 자리잡은 나무들과 그 사이로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항아리들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