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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관조자들

노동이란 겉보기에 근사한 한두 가지 의미나 기쁨을 위해서 백여 가지 견마지로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체를 만드는 일도 예외가 아닌데 이번주에는 견마지로를 하는 동안 여러 번의 기쁜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화를 통해서 마음과 관계를 치유해보자는 정성어린 제안, 이재용 감독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내면에 대한 진솔하고 진심어린 소개를 접하는 기쁨은 청명하고 깊다. 기력이 쇠한 몸이 기름기 없이 맑은 고급 음식을 접한 듯한 쾌감과 통한다.

이들 감독 혹은 필자들의 태도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관조와 연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분야와 직능을 막론하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진심을 다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귀기울이면,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메시지로 모아진다. 그것은 바로 승인된 문화 규범의 바깥에 있는 이질성이나 불일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리오타르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화합할 수 없음’ 자체다.

이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동시에 강조되어야 할 것은, 제도나 규범을 의심하고 경계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제도나 규범의 경계를 ‘설정’하려는 노력 역시 우리 삶에서는 의미있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실이다. 무엇이 더 가치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각의 개인이고, 개인은 자신의 가치에 헌신한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무언가를 반대한다는 말로써 자신을 설명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인간과 시스템을 관조하되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단정적으로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이질성을 사랑하고 그 혼돈을 껴안아가며 자기의 방식을 설계하는 ‘쿨한’ 관조자들의 글과 영화에서 감동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