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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갑작스레 떠나왔다. 약속한 일 독촉하러 전화했던 말수 적으신 학교 선배, 몸이 비상신호를 보내와서 1년 만에 휴가 갖는 거라는 변명 듣더니 “그런 식으로 일한다고 누가 상 주나” 하신다. “그러게요.” “상 받은들 뭐 할 거라고.” “그러게요.” 일을 한주 연기해놨다는 전화를 다음날 받았다.

하루 반에 걸쳐 도착한 강릉. 피로를 이기지 못해 도중에 1박을 한 때문이지만 여행을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고 즉흥성을 즐기는 탓이 더 크다. 인적 드문 바다, 늦은 오후의 호숫가, 선교장의 뒷산 솔숲을 걸어다니며 회복의 느낌, 장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갖다. 다음날 다시 찾은 선교장. 세종 임금의 형이었던 효녕대군의 후손이 중종대, <대장금>의 바로 그 시절부터 세거하던 대저택. 날씨가 쌀쌀해선지 오후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옥. 이 집이 매혹적인 한 이유다. 비는 오지 않았다. 서울발 일기예보에서는 동쪽에서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중앙에서 뿌려대는 지식이 때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건 즐겁기조차 하다.

개발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지역들이 보배로 떠오르는 시절이다. 앞으로 우리는 근대화라는 이름의 광기를 피해 살아남아 있는 자연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야 할 것이다.

아무렇게나 챙긴 책들의 저자 중에 두명의 미셸을 발견하다. 하나는 투르니에, 다른 하나는 푸코. 편집장이란 다른 사람이 보내준 글을 모두 읽고 포장을 매만지는 게 업무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리. 활자 멀미를 넘어서 눈이 안 보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코를 들이박고 읽는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늘 내 증상들을 본다. 정신적 병리란 낯선 곳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와 이성이 구조를 갖춰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다양한 변형들이거나 일부분의 구조가 함몰된 경우라는 생각. 정신병은 정상적인 것의 다른 얼굴, 보편성의 어둠이다.

허균 생가를 찾다가 허탕을 쳤다. 다른 장소들과 달리 관광 안내 표지판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생가를 복원할 만큼 유명인이지만 역적으로 생을 마쳤기에 뚜렷하게 자랑하고 싶지는 않은 것일까. 평생을 거리의 시인으로 살았던 김시습은 강릉 김씨의 사당에 모셔져 자손들로부터 '매월당 할아버님'으로 불린다. 죽은 뒤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주 잡지 제작을 책임지고 있는 김봉석 기자에게 에디토리얼도 써달라고 했다가 “반드시 쓰셔야 합니다. 아니면 백지로”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받다. 밤의 카페에 앉아 있는데 친척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식까지 딸린 녀석이 다짜고짜 엉엉 운다. 아침엔 후배 기자에게서 몸이 아파 병가를 내야겠다는 전화를 받다. 김봉석씨의 말은 탄핵 정국, 주간지 제작의 숨가쁨을 벗어나더라도 그래도 피하지 못하는 내 몫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느릿느릿 걸어 PC방에 왔다. 휴식이란 일상과 슬픔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를 돌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를 흉내내어 글을 쓰다. 전화 꼬리에 매달려 있는 내 휴가가 가엾으면서도 행복의 느낌을 복합적으로 만들어준다. 아직도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