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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상상하기

올해 칸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전략적인 주목 대상으로 선택했다.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두루 훑어보는 균형과 집중적인 이슈 만들기를 기본 목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영화만큼 후자의 측면에 잘 부합하는 아이템도 드물 터이다. 좋은 일이다. 영화인들끼리 서로 자신의 일인 양 놀라워하면서 수상의 가능성까지 점쳐보는 한담도 즐거워 보인다. 올해 두명의 취재기자를 칸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던 <씨네21>이 그곳에서 벌어질 풍경들을 다채롭게 보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미리 흐뭇하다.

이런 유의 외국 ‘잔치’는 길게 보면 15년 이상, 짧게 보아도 10여년 가까이 축적된 다각도의 노력이 맺어내는 하나의 결실이다. 1980년대의 임권택, 이장호, 박광수, 장선우, 배창호로부터 조심스럽게 명명되기 시작한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그뒤로 단 한번의 심각한 후퇴없이 지그재그로 폭과 깊이를 넓혀왔다. 만약 누군가가 앞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처럼 하게 두라, 고 나는 답할 것이다. 문화라는 게 원래 그렇다.

때마침 <씨네21>이 창간 9주년을 맞이했다. 창간 당시를 회고해보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영화를 주간지라는 형태의 대중적 저널로 다룬다는 것, 적절한 섹션과 코너를 개발하고 꼭지마다 기사의 스타일을 창안하는 것, 기획 아이템과 인물 인터뷰를 어떻게 끌어나갈지 등, 현재 <씨네21>의 기본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정초하면서 매주 잡지를 만들어내느라 젖 먹던 힘까지 다했던 시기다. 그뒤에는 이같은 구조와 요소를 유려하고 정교하게 가다듬고 향취를 불어넣음으로써 영화를 넘어 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를 아우르는 잡지계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적 업적이다. 조선희, 안정숙, 허문영 전 편집장, 함께 일해온 기자들 그리고 모든 관련자들에게 축하와 존경을 표한다.

미래의 <씨네21>을 상상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과거에 이루어진 모든 창조력은 당대 한국 영화계의 조건과 발전단계, 과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칸으로부터의 소식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향후의 한국 영화계는 지난 9년간의 한국 영화계와 매우 다른 지형에서, 엄청나게 다른 속도로 움직일 것이다. 눈 밝은 독자라면 최근 <씨네21>이 모색해온 다각도의 변화 노력이 이러한 흐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는 시행착오를 반드시 포함한다. 그러나 변화와 함께하지 않는 명성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 또한 철칙이다. 한국 영화계의 변화, 발전에 발맞추며 특정 측면에서는 선도까지 하는 능력은 앞으로의 <씨네21>에 주어진 숙제이자 <씨네21>만이 자임할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내셔널 시네마’를 하나의 비평적 화두로 제시한다. 필자인 김소영 교수가 지적한 대로, 내셔널 시네마는 ‘한국영화’라는 익숙한 개념 안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차이와 의미망들을 건져올리는 동시에, 외부의 시선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작금의 한국영화를 사유하는 개념틀이다. 나는 여성학자의 오랜 이론적 노고를 <씨네21>에 소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영화의 발전에 걸맞은 비평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한국 영화계가 서구로부터의 손짓에 대한 순진한 매혹과 도취에서 깨어나 아시아의 성숙한 일원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비평적 안목을 도입하자고 이를 빌려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