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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차니스트의 첫인사

나는 귀차니스트다. 나 자신은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렇게 말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정말 그렇다. 무슨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나의 반응은 일단 “아이, 귀찮아”에서 시작한다. 이가 아파도 웬만하면 참다가 병원에서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하면 “병원 가기 귀찮아서요”라는 대답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심심해서 친구한테 만나자는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전화번호 누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심심한 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귀차니스트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화 <스노우캣>은 그런 면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내가 귀찮아서 안 한 일 가운데 대표적인 한 가지는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두번 떨어져보고 즉각 포기했다. 아마도 마지막 시험을 봤던 시간이 오전 9시였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9시가 넘어서 잠에서 깬 나는 다시는 운전면허시험을 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세상은 점점 귀차니스트가 살기 힘든 곳이 되고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이라는 귀차니스트의 모토가 무색하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불가피하게 관계맺어야 할 사람들도 늘어간다. 게다가 휴대폰이나 이메일 같은 문명의 악귀들은 어디를 가도 따라붙어 머리 속을 뒤흔들어놓는다. 얼마 전, 안 그래도 귀찮은 일투성이인 세상에 참을 수 없는 귀찮음이 더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버스노선이 죄다 바뀌었다. 운전면허 없이 뚜벅이로 살아온 수십년, 안심하고 타고다녔던 버스가, 내가 그렇게 믿고 따랐던 버스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버스기사를 붙잡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건 면허없는 나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엉겁결에 그냥 재빨리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망연자실, 누구를 원망하나?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 버스정류장 푯말을 발로 찼다. 발이 아팠다. 푯말은 쇠기둥이었다.

귀차니스트에게 분노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화를 낼 때는 평정을 유지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버스노선 때문에 그날 화가 났고 그래서 피곤했다. 하지만 그래도 귀차니스트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무감해지고 무신경해지지 않고서는 귀차니스트가 될 수 없다. 삶이 너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그런 정신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거듭 다짐하건만 이 사회를 살면서 완전히 눈감고 귀닫는 건 불가능하다. 김선일씨가 살려달라고 말하는 테이프를 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부모와 여동생이 오열하는 장면을 본 것도 그랬다. 정성일씨의 말대로 테이프는 <링>의 비디오 테이프처럼 불멸이었다. 그 잊을 수 없는 공포가 분노가 되어 전쟁광 부시와 전쟁광을 돕겠다는 정부를 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무렵 영화인들의 선언이 내 무딘 양심을 찔렀다. 푹~. 그렇다. 아무리 귀차니스트라도 외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이라크 전쟁 반대와 파병반대는 그래야 할 깃발이다. 만국의 귀차니스트들이여, 단결하라!

오직 내 일상만 놓고보면 귀찮은 일이지만 <씨네21> 편집장을 맡았다. 살다보면 귀찮아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부터 할 일도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한다. 지난주 <씨네21>에 파병을 반대하는 영화인의 목소리를 담으면서 앞으로도 귀기울이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고 싶다. 귀차니스트인 내가 지금 열정을 발휘할 두 가지 일이다.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