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

9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은 동갑내기다. 생일은 <씨네21>이 빠르지만 같은 해 태어난 인연 때문인지 부산영화제는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제 일간지를 만들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멍하니 창 밖을 보니 옛날 일이 떠오른다. 1995년 가을 부산영화제는 국내에서 처음 생기는 국제영화제로 닻을 올렸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라고 당시 편집장 조선희 선배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말할 입장이 못 된다. 솔직히 초보 기자였던 난 이 거대한 영화제에 대해 별 감상이 없었다. 그 무렵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 부산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설레는 대신 부산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다. 어찌된 일인지 태어나서 한번도 부산에 안 가봤기 때문이리라. 부산에 가면 해운대에 가봐야지, 바다에서 일출을 봐야지, 어쩌면 멋진 로맨스가 있을지도, 뭐 그런 잡스런 생각에 혼자 들떴다. 돌아보니 낯이 뜨겁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멋진 해변을 꿈꾸며 남포동 극장가에 짐을 풀었다. 물론 환상이 오래가진 않았다. 매일 영화제 소식을 담는 신문을 만드는 건 총만 안 들었지 완전히 전쟁이었다. 일은 자정을 넘어 계속됐고 새벽에 마련된 술자리는 해변의 추억과 거리가 멀었다. 기필코 해운대에 가보리라, 다짐했지만 차로 1시간 걸린다는 말에 좌절했다. 그래서 영화제 첫해 해운대를 보긴 했던가? 피로와 숙취와 담배연기만 떠오를 뿐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았는가? 역시 아니다. 영화제 일간지를 만드는 기자가 아니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지만 영화제 취재를 하면서 영화를 볼 시간은 없다.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들어가고 즉시 기사로 쓰고 그러다보면 자정을 훌쩍 넘겼다. 영화제 첫해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지난 8년간 부산에서 극장가서 제대로 본 영화는 열 손가락에 꼽는다. 다시 낯이 뜨겁다.

내가 부산영화제 일간지 실무책임을 맡은 건 4회 영화제 때였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지금도 그 날의 고통을 잊을 수 없다. 장염, 그렇다. 그해 영화제는 장염으로 고생했다는 기억만 선명하다(혹자는 이질이 아니냐며 날 피해다녔다). 영화제 초반, 뭘 잘못 먹어서 그랬는지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5분 간격으로 설사와 구토가 번갈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중국영화의 희망’이라 불리는 감독, 지아장커를 만났다. 데뷔작 <소무>를 국내에 처음 공개한 그는 그때 그저 젊고 가난한 청년감독으로 보였다. 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론 ‘그래, 힘들게 찍었다며, 그런데 나도 힘들다. 내가 배가 무척 아프거든’ 그런 심정이었다. 무척 할말이 많아 보이는 감독에게 난 말했다. “네,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곤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시나 낯이 뜨겁다.

돌아보면 부끄럽고 힘들었던 일만 떠오르지만 그래도 보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극장에서 상영을 기다리며 <씨네21> 일간지를 펼치는 관객을 볼 때, 병문안하듯 빵과 주스를 사들고 일간지 사무실을 찾아와 “수고한다”며 격려하는 이들을 만날 때, 짧지만 짜릿한 희열이 스쳐간다. 1년에 1주일, 부산 극장가에서 단 10분 정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글이지만 관객에게 유용한 어떤 일을 했다는 성취감 때문이리라. 세상을 위해 꼭 없어도 상관없는 아주 작은 즐거움이지만 나의 노동이 만든 결과물이 타인에게 필요한 물건이 됐다고 확인할 때 느끼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아마도 영화잡지를 만드는 일 자체가 그런 것이리라. 농사를 짓거나 빵을 만드는 일보다 덜 유용하지만 없으면 조금 허전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소설에서 잡지에 글을 쓰는 직업을 “눈을 치우는 일”이라고 비유했던 대로다. 골목길 눈을 누가 쓸든 안 쓸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마는 아무튼 눈을 쓰는 사람이라면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아마 그 길을 지나는 누군가가 눈을 잘 쓸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일 새벽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