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적당한 비관을 즐기시길

수능이 끝났다. 수능 시험장을 보여주는 TV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교문 앞에 나와 선배를 응원하는 후배들, 시험장에 늦어 경찰관의 호위를 받으며 급히 달려가는 아이들, 100일 불공을 드리고 추운 날씨에도 교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들, 모든 풍경이 내가 시험을 쳤던 20년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입시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어떻게 대학을 가는지도 모르지만 그 풍경만은 똑같다. 갑자기 요즘도 수능점수가 당신들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온갖 신문에서 1면 머릿기사로 수능 난이도에 대해 언급하는 걸로 봐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대부분 어른들이 이 시험만 잘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된다, 취미 활동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약간 의심은 했지만 대충 믿어버렸다. 그래서일 것이다. 대입시험이 끝난 뒤 일종의 공황상태가 왔다. 한달간 매일 술을 마시기도 했고 담배를 배웠고 겨울바다를 보겠다고 여행을 갔지만 허탈함은 가시지 않았다. 막상 들어간 대학도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대학에 가면 있다던 장밋빛 세상은 거기 없었다. 내가 다닐 때는 최루탄 연기에, 지금 학생들은 취업경쟁에 숨이 막힌다.

만약 그때 대학을 가도, 사회에 나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내 선택이 바뀌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 대학이나 사회에 대한 기대치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고 대입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최소한 수능을 망쳤다고 자살하는 학생은 안 생기지 않을까? 얼마 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을 다시 보면서 기타노가 하고 싶은 말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즈 리턴>의 두 주인공은 학교 대신 사회에 나가는 걸 택한다. 하나는 권투선수로, 다른 하나는 야쿠자로 약육강식의 정글에 뛰어들어 결국 처절한 상처만 입고 학교 운동장으로 되돌아간다. 물론 그들처럼 삐딱한 녀석들만 좌절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세일즈맨이 되고 누군가는 만담가가 되지만 얼마간 실망을 경험하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의 마지막에 교실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 학생이 등장한다. 그 학생에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두 청년이 신기하고 멋져 보이겠지만 우리는 안다. 이미 그들이 쓰라린 패배를 맛본 뒤라는 걸. 그들의 아픔과 낙담이 교실 창문 너머 존재하는 자유의 의미다. 냉정한 얘기지만 기타노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에서 만나는 세상도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다면, 한번의 대입시험에 난리법석을 피울 이유도, 시험 못 봤다고 절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키즈 리턴>의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라는 대사는 그런 가혹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났을 때 비로소 깊은 울림을 갖는다.

어쩌면 어떤 음모가 있을지 모른다. 이번 시험만 잘 보면 다른 세상이 온다고, 이번 한번만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세상은 그렇게 가르치면서 함부로 희망을 약속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능사일까? <키즈 리턴>처럼 미래엔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대입시험은 아무것도 아니다, 일류대 가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더 어려운 시험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반대로 너무 멋진 내일을 약속하는 자는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 떠돌이 약장사, 다단계판매책, 사이비교주, 사기꾼 사업가, 엉터리 정치가들이 한결같이 미래에 대한 환상을 팔고 다니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장밋빛 내일에 너무 많이 베팅하지 마시길. 적당한 비관은 참된 희망의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