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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한국영화와 한국축구

지난 2002 월드컵

<태극기 휘날리며>

가끔 한국영화와 한국축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자 월드컵 4강의 환호가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는 사실이 월드컵의 광기를 보는 듯했다. 물론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 같은 눈에 보이는 이벤트는 없었지만 무언가 열광할 만한 것을 찾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의 환호를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실망도 빨리 하는 편이다.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대표팀의 경기에서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만, 베트남, 몰디브 등 월드컵 근처에도 못 가본 나라들한테 쩔쩔매는 경기를 하는 걸 보면서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래서는 내년 독일월드컵에 참가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한국영화는 한국대표팀의 오만전을 연상케 한다. 문전처리 미숙, 골결정력 부족, 수비불안 등 한국축구의 고질적 문제점 같은 것이 한국영화에도 있다. 한국축구,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처럼 한국영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축구가 많이 나아진 건 사실이다.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도 좋아지고 선진 축구의 전술을 익힌데다 월드컵 4강의 자신감이 더해져서 무조건 꿀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축구환경에서 한수 위인 일본을 한국이 이기는 걸 보면 아시아의 맹주라고 얘기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 한국축구 성장의 밑바탕에 있던 것은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열등감이 아닐까 싶다. 남미와 유럽의 축구 수준과 확연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옛날을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다. 체코와 프랑스에 5 대 0으로 진 다음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팀과 맞붙어 처절하게 깨진 경험이 큰 도움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은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바뀐 결정적 계기일 것이다. 아무튼 열등감 또는 실력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발의 정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 내가 어디쯤인지 아는 겸손함 없이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성장한 힘도 근본적으로 열등감이 아닐까 싶다. 할리우드만큼 유럽 작가영화만큼 못 만든다는 열등감에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생겨났던 것 같다. 이런 걸 두고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하던가.

가끔 요즘 한국영화엔 이런 열등감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대충 만들어도 장사는 된다는 오만(어멋, 이것도 오만이네)이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때론 좋은 영화의 기준을 잘못 세우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워킹 타이틀 로맨틱코미디쯤은 우리도 만들 수 있죠.” “이제 할리우드영화는 한국영화랑 경쟁이 안 돼요.” 이런 말을 제작자나 감독에게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하다. 특정 영화가 상을 받고 특정 영화가 관객 1천만명이 든다고 막말을 하면 안 되지 싶다. 월드컵 4강에 올랐어도 FIFA 랭킹 21위를 다행으로 여기는 한국축구의 겸손함을 배워야 될 텐데…. 자꾸 노파심이 생기는 건 그냥 내가 늙어서일까? 그럼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