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배트맨,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다행이다

<배트맨 비긴즈>

<배트맨 비긴즈>는 조엘 슈마허가 망쳐버린 <배트맨>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로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심금을 울린 대목 하나는 상처를 입은 배트맨이 길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잽싸게 건물 옥상으로 솟아올라가는 대목이다. 잠시 쓰러져 있어도 될 텐데 누가 볼까 겁나 사력을 다해 몸을 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그가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두려워하던 박쥐를 자신의 심벌로 택한 것과 관련된다. 브루스 웨인은 상처입고 쓰러진 배트맨이 목격되는 것이 배트맨이 죽는 것보다 나쁜 사태라고 여겼을 것이다.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은 배트맨의 실제 능력이 아니라 배트맨에 대한 신비감이기 때문이다. 배트맨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배트맨은 슈퍼히어로이길 멈출 것이다. 배트슈트와 배트카로 누구나 배트맨이 될 수 있다면 그따위 배트맨을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배트맨 비긴즈>는 돈은 많지만 초능력은 없는 인간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들여다본 영화다.

배트맨의 기원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좀더 넓은 의미로 보자면 슈퍼히어로의 매력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슈퍼맨>을 보면서 지구를 7바퀴 반보다 빨리 돌아 사랑하는 여인을 되살려내는 모습에 감동했던 나는 오랫동안 슈퍼히어로의 매력이 그런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파이더 맨2>와 <배트맨 비긴즈>를 보며 든 생각은 거꾸로다. 분명 그들의 초능력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영화로 만들 때 오히려 중요한 건 그들도 남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 맨> 1, 2편에서 관객의 감정을 몰아가는 추진력은 스파이더 맨의 놀라운 활공능력이 아니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피터 파커의 일상이다. 여자친구를 지켜야 하고 집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지구까지 지키라니, 이 얼마나 딱하고 가여운 인생인가. 피터 파커가 제시간에 피자 배달도 하고 악당도 물리치느라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스파이더 맨>에 감정을 몰입하는 이유다. 저렇게 힘들 바에야 슈퍼히어로 안 하고 말지, 하는 심정이 들 정도다.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도 피터 파커 못지않게 바쁘다. 옷 갈아입는 데 걸리는 시간만 따져도 스파이더맨보다 몇배 더 걸리니 앨프리드 집사라도 없었으면 그 생활 유지하지 못했을 게다. <배트맨> 시리즈 3편과 4편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도 배트맨의 이런 매력을 사장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조엘 슈마허의 두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고뇌를 살피는 대신 배트맨과 등장인물들의 번쩍이는 자태만 강조하는 영화였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 본 <슈퍼맨>의 클라크 켄트도 무척 수줍음이 많은 남자여서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그렇게 큰 덩치를 가진 남자가 여자 앞에서 쩔쩔매는 꼴이 무척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슈퍼히어로도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콤플렉스와 고민을 안고 산다. 그래서 내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얻는 위안이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액션의 쾌감이 아니다. 불행과 악운이 나만 쫓아다닌다고 생각하다가 슈퍼히어로도 나처럼 힘들다는 걸 느끼는 순간, <스파이더 맨>의 메이 숙모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넌 슈퍼맨도 아니잖니.” 그렇다. 난 슈퍼맨도, 스파이더 맨도, 배트맨도 아니다. 지구를 안 지켜도 돼서 한 가지 일은 덜었으니, 휴∼, 다행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