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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진행하며
2000-01-11

우리 집 앞에는 굉장히 커다란 비디오대여점이 있다. 이번에 <씨네21>에서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하면서 일정한 실사기준에 의해 채점한 성적표에 따르면 바로 이 대여점이 4등이다. 좋은 비디오대여점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얼마만한 행운인지는, 이 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돼 곧 알게됐다. 예전에 나의 비디오대여점 출입은 대체로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들을 건지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3만편을 소장하고 있는 이 대여점을 드나들면서 목적이 다양해졌다.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영화 줍기,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연보를 체크해가며 한편씩 봐치우기, 신작 위주의 개봉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고전들 찾아 보기. 영상자료원이나 사설 시네마테크를 찾아다닐 시간 여유가 없는 나는 ‘내 인생의 영화’들 상당수를 이 비디오숍에서 빌려보았다. 물론, 70년대 이전 한국영화나 세계영화사의 고전 리스트가 몹시 빈약한 한국 비디오산업의 얄팍함을 일선의 비디오숍들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씨네21>이 우수비디오숍콘테스트를 연례행사로 기획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다시 말해, 시네마테크 불모지인 한국의 영화수용문화에서 좋은 비디오대여점이 담당해야 하는 기능을 염두에 둬서다. 그래서 이 행사가, 어려운 여건에서 비디오대여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운영자들을 격려하고 독자들에게는 좋은 비디오숍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려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지역만을 대상으로 해서 섭섭하다는 분도 계셨는데, 다시 한번 알려드리자면 올해 서울지역에서 시작한 비디오숍콘테스트는 이변이 없는 한 해마다 경기-강원, 충청-전라, 경상도 순으로 지역을 순회한다.

사실, 나는 좋은 영화는 일단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디오란 영상매체의 입체적 효과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유통구조 바깥에 있는 영화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비디오 얘기가 나왔으니 평소에 비디오 관람을 방해하는, 작지만 아주 중대한 문제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영화의 마지막, 아마도 모든 감독이 가장 고심했을 바로 그 장면의 여운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감사합니다’라는 자막이다. 이 자막은 엔딩타이틀을 내내 가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간혹 괜찮은 TV영화를 보았다 싶은데 엔딩타이틀은 물론 마지막 신 일부를 잘라먹으면서 CF가 튀어나오는 것에 견줄 만큼 김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