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장률과 하네케

장률 감독의 <망종>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망종>을 보고 난 뒤 이 지면을 통해 “장률은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영화였고 언젠가 개봉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기뻤고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특집기사로 다루기엔 너무 덜 알려진 감독이고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모을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흥미만 좇아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이번 특집은 터무니없을 것이다. 지아장커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달리 장률은 아직 서구 영화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특집기사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영화잡지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를 묻게 만드는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장률의 영화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망종>을 본다면 당신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영화엔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공간은 텅 비어 있고 인물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들리는 소리는 거리의 소음 뿐이다. 카메라가 거기 그냥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마음에 들어 있는 기대와 아픔과 슬픔과 설움이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이다. 장률은 처음 영화를 만든 계기가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있다”고 한 자신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장률의 영화는 정말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돈이 많이 들 일도 없고 스타는 절대 필요치 않으며 세트나 조명에 공을 들인 흔적도 없다. 여기까진 아무나 만들 수 있다는 말 그대로다. 그런데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아무나 만들 수 있다며 장률이 실천한 영화는 그렇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영화가 된다. 나는 이런 유의 영화를 부패 위험에 처한 영화를 위한 방부제라고 생각한다. 또는 영화의 타락을 거부하는 굳은 다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망종>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이번호에 함께 다루게 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다. 두 영화 모두 표정변화가 없는 어느 여인을 물끄러미 관찰하는 영화였고 마지막에 놀라운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공간과 정서 면에선 베이징과 비엔나만큼 거리가 먼 영화지만 두 감독의 시선만큼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세상의 형상을 그려낸다. 이번호에 실린 두 감독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답변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장률과 하네케의 영화를 보다가 흔한 대중영화들을 보노라면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장률이나 하네케의 영화만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끔찍할 수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 영화가 너무 이것저것 채워넣는 영화들이란 점이다. 뭔가를 덜어내야 할 자리에 볼거리든 들을 거리든 꾸역꾸역 밀어넣는 영화들. 그럼으로써 스스로 빈곤함을 보여주는 영화들. 그런 영화만 보다가 장률이나 하네케의 영화를 보면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정신이 번쩍 난다고나 할까. 영화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어지는 영화는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PS. <씨네21>은 조만간 TV 전문 웹진인 <매거진 T>를 만들 예정이다. 영화에 한정된 우리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로 TV를 통한 대중문화 읽기와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할 계획이다. <씨네21>이 그랬던 것처럼 방송연예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언론, 가장 믿을 수 있는 언론,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는 언론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의욕과 실력을 갖춘 분들이 이번호에 나온 채용공고를 놓치지 않으시길. 아울러 <씨네21> 독자 여러분들도 <매거진 T>의 창간을 기대하시라고 말씀드린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