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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데자뷰와 딜레마
이영진 2013-04-22

“최근 OO의 행보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 영화인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얼마 전 연락을 나눴을 때만 해도 영화계 안팎에 별다른 이슈가 없다고 잘라 말했던 그였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이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뗀 그는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이 발의 준비 중인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문제삼았다. 이번 개정안은 특정 영화가 일정 스크린 이상을 점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겸업 및 영화제작업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그는 제2차 노사정 이행 협약(4월16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개정안이 발의되면 지난 8개월 동안 영화계 제 단체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고 걱정했다. 단계적으로 산업 내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자고 1년 전에 약속했는데, 법안이 발의될 경우 그동안 협상 테이블에 참여해왔던 대기업들이 노사정 이행 협약을 끌어낸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에서 대거 이탈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와 통화하면서 문득 2006년의 어느 날이 겹쳐 떠올랐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스크린 독과점 제한을 위한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영화계의 의견을 모으던 때였다. 당시 목수정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개정 법안의 취지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렇게 답했다.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가 가능할까요, 법적 규제가 과연 능사일까요. 영화인들이 이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할까요. 지금은 다른 방식의 해결책 마련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그는 적지 않게 실망했던 것 같고, 그러한 아쉬움을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2008)에 고스란히 적었다. 한국영화 제작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던 때에 그 책을 읽었던지라 용기없는 영화인들을 비판한 구절에서 마음이 쓰렸다. 물론 지금도 그때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현실적인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한 영화인의 토로 앞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를 괴롭혀왔던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를 해결할 방도가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됐다. 발의 및 통과 여부는 둘째치고, 대기업 규제에 있어 한층 강화된 이번 개정안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