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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보고 싶다
이영진 2013-07-15

“누워서 해도 되죠?” <신라의 달밤>(2001) 개봉을 앞두고 김혜수를 인터뷰할 때였다. 사진 촬영을 끝낸 뒤 김혜수는 너무 피곤하다면서 누워서 인터뷰를 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인터뷰가 취조도 아니고 면접도 아닌데요, 그럼요, 라고 말하기 전에 김혜수는 이미 하이힐을 벗고 소파에 몸을 뉘였던 것 같다. 그때 무슨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정신분석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편히 누워서 촬영장에서의 기억을 하나씩 토해내는 모습은 뇌리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의 답변은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오로라 공주>(2005)를 끝낸 뒤 문성근을 인터뷰할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스튜디오나 카페 대신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인터뷰 도중 잠깐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그 곳에서 있어서라고 했다. 기념관 회의실을 인터뷰 장소로 따로 구해야 하나 싶어 두리번거렸는데 문성근은 뭐하냐면서 그냥 풀밭에 앉아서 하자고 했다. 그러고선 등산용 신발부터 벗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번엔 배고프다며 근처 기사 식당으로 이끌었고, 돼지불백을 먹으면서 인터뷰는 계속됐다.

착각일지 몰라도 이런 인터뷰는 특별한 만남처럼 여겨진다. 상대가 말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여줄 때, 그리고 그걸 지켜볼 수 있을 때 특별한 만남의 쾌감이 발생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우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하루에 10개 넘는 매체와 릴레이로 인터뷰를 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쾌감이다.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국을 찾고 있지만 그들의 육성을 제대로 듣고 그들의 캐릭터를 맘껏 엿볼 기회를 얻은 매체는 거의 없다. 오직 레드카펫에 쏟아지는 관객의 환호성만을 반복해서 중계할 뿐이다.

특별한 만남은 이제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이전의 특별한 만남들을 더듬어본 건 가세 료 인터뷰 때문이다. 정한석 기자가 가세 료에게 “열정적인 시네필이라고 들었다.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라고 물었는데 가세 료는 즉답 대신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줬다고 한다. 일정 때문에 인터뷰는 급작스럽게 이뤄졌고 인터뷰 시간 역시 충분치 못했지만 독자들은 가세 료가 어떤 사람, 어떤 배우인지를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촬영현장에선 “피로엔 가세 료”라는 농담이 돌았다고 한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마감에도 역시 가세 료”였다.

☞ 가세 료와의 특별한 만남 때문에 정한석 기자의 ‘신 전영객잔’은 913호가 아닌 914호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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