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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기자는 기계가 아니다
이영진 2013-08-12

남동철 전 편집장의 취재기자 시절 별명은 ‘기사자판기’였다. 편집장이 원하는 대로, 독자들이 바라는 대로, 기사들을 재깍재깍 송고했다. 빨리 쓴다고 ‘품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몇달 전에 최용배 청어람 대표가 인터넷에서 검색한 <씨네21> 기사를 보고서는 “이 기사 진짜 재밌는데 누가 썼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찾아보니 남동철 전 편집장이 쓴 글이었다. 그때 그 시절, 한줄도 못 쓰고 담배만 축내는 후배들을 향해 마감 고수는 날카로운 비수를 던지고서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얘들아, 수고해!”

송경원 기자의 영화평론가 시절 별명은 ‘송 수석’이었다. 어떤 원고를 맡겨도 오케이였고, 마감도 무지하게 빨랐다. 그 역시 허투루 글을 보내는 필자는 아니었다. 10년 만에 드디어 ‘제2의 기사자판기’가 탄생했구나. 송 수석의 등장으로 <씨네21> 기획회의 시간 역시 덩달아 단축됐다. 송 수석은 이를테면 퀴즈 프로그램의 찬스 같은 존재였다. 손 빠른 필자가 필요할 때마다 모두들 한목소리로 외쳤다. “송 수석이 있잖아요!”

그랬던 송 수석, 아니 송 기자가 지난주 긴급 휴가를 요청했다. 이유를 묻진 않았는데, 송 기자와 가까운(?) 편집기자가 마감 뒤 음주 중에 저간의 사정을 일러줬다. “지쳤나봐요. 글쓰기를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씨네21>이 손 빠른 그를 스카우트한 지 1년이 조금 못 됐는데 벌써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모양이다. 송 기자뿐인가. 이번 주 수요일에 퇴근하려는데 동료들이 밤샘 마감을 위해 고카페인 음료를 보약처럼 들이켜고 있다. 죄스럽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최악의 직업은 기자라는 기사를 봤다. “연봉, 직업 전망, 작업 환경, 스트레스 4개 부문에 걸쳐” 평가가 이뤄졌는데, 기자는 200개 직업 중 꼴찌였다. 192위는 지붕수리공, 196위는 석유굴착노동자, 199위는 벌목 노동자였다고 한다. 만족도와 선호도 면에서 한국의 직종 중 잡지기자는 몇위일까. 물어보나마나다. 가끔 동료들이 혹독한 마감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무한능력 LTE급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니 제발.

☞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있다. 일례로 시사가 늦어져 영화 본 다음날까지 수십매의 원고를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늘고 있다. 예외상황이라면 모르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비일비재 일상사다. 영화사도 사정이야 다 있겠으나 마감에 쪼이는 기자들 사정도 좀 봐주면 좋겠다. 파트너라고 진짜 여긴다면 말이다.